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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민
star3.5
아사히-마이니치보다 더욱 리버럴하고 사회운동적 경향을 보이는 도쿄신문의 기자이자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 기자회견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고, 정권의 비리 의혹을 취재한 것으로 유명한 모치즈키 이소코의 동명 논픽션 에세이가 원작입니다. 연상호의 <염력> 이후로 한국 활동을 쉬던 심은경의 일본영화 첫 주연작이기도 합니다. 공동주연인 마츠자카 토리가 한국의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인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공무원 ‘타카스기’로, 심은경은 원작 저자와 비슷한 기자이자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설정이 붙은 ‘요시오카 유리카’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는 단 한 번도 아베 신조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후반부에서 대사로 아사히-마이니치-요미우리를 언급하는 것을 제외하면 최대한 실명이나 실제 기관을 부르는 것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알듯이, 영화의 초점은 분명하게 아베 정권과 정권의 의혹을 향합니다. (특히 총리가 연루된 의혹을 받는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 허가 압박 사건을 중심에 삼습니다.) 타카스기는 계속 위로부터 ‘국가를 지킨다는 이유’로 SNS를 통한 여론 조작만 하는 것에 점차 회의를 느끼고, 요시오카 역시 힘들게 사건을 조사한 기록이 제대로 신문에 실리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정보기관 직원과 기자는 평소에 함께 움직일 일이 없는 직군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내각 차원에서 의과대학 신설을 밀어붙인 기밀자료가 요시오카가 일하는 토도신문(‘도쿄신문’의 이름 변형)에 알려지고, 다시 이와 얽힌 타카스기의 선배가 자살을 하며 일은 급속도로 커집니다. 두 사건 모두에 얽힌 타카스기와 요시오카는 그렇게 서로를 알게 되며 함께 행동하게 되는 과정을 영화는 그리고 있죠. 이 묘사에서 강조하는 것은 아베 정권의 전횡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론의 존재 이유’기도 합니다. 소위 한국에서도 ‘기레기’라는 말이 언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으로 탄생한 말인 것처럼, 영화 역시 자극적인 묘사에 천착하며 도의를 내버리고 가십을 유포-확산하는 일본 언론의 어떤 모습에 비판적으로 다가갑니다. 그 사이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 소식 또한 묻히고, 조작의 결과인지 실제 네티즌의 반응인지 알 수 없는 SNS 여론도 요시오카를 힘들게 만듭니다. 영화는 정권은 물론 국가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의 내막을 짚어내는 기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진중한 톤으로 다뤄내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요시오카와 타카스기의 공이 모두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동시에 ‘기자’인 요시오카와 어디까지나 ‘정보기관원’인 타카스기의 입장이 함께 움직이기 어렵다는 점도 결말부에 함께 드러냅니다. 일본인으로써 ‘일본’을 지키고 다시 ‘가족’을 지켜야 하는 타카스기와 달리, 이미 자신이 태어난 과정은 물론 저널리즘을 배운 곳도 모두 경계에 서있는 요시오카가 지키고 싶어하는 이념은 결코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영화는 통쾌하기 보다는, 오히려 씁쓸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을 피하지 않고 드러냅니다. 내부고발을 통해 습득한 정보와 이를 기사로 다뤄내는 고민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와 유시하지만, 이미 ‘언론의 자유와 감시 기능의 중요함’을 강조하며 수십년 전 일단락 된 ‘파나마 페이퍼스’와 달리, <신문기자>의 기반이 된 가케학원 의혹은 현재진행형인 사건입니다. 동시에 확정적으로 ‘마무리’지으며 언론의 소중함과 함께 정의가 승리함을 보이는 <더 포스트>와 달리, <신문기자>는 언론의 책무가 확정적인 승리나 패배로 연결지을 수 없음을 말하며 더 복합적인 면모를 드러내려 시도합니다. 근래 한-일에서 미디어를 전면에 드러낸 작품 중에서는 가장 깊숙하게 언론을 묘사한 점이 돋보이고, 특히 심은경의 연기는 몇몇 억양을 제외하면 일본어를 능숙하게 잘 하는 것은 물론 공적인 책무와 사적인 감정 사이에서 고뇌하는 ‘기자’의 이중적인 위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일본의 현재는 물론 언론의 역할 모두를 묻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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