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천수경

천수경

3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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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영화 ・ 2001

평균 3.6

나에게 누군가 조금이라도 중요해지면 최소한 친구 한 명한테는 그 사람 얘기를 해둔다. 내가 혹여 실수로라도 죽어버리면 그 사람이 내 장례식에 혼자 와서 뻘쭘하게 자신을 소개할 일이 없도록. 그 공간에선 단 한 명도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그래서 친구들을 서로에게 많이 소개해주는 편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친한 이들에게 그 사람의 특장점들만 미리 일러둔다. 이상한 바람이지만, 그 사람이 내 장례식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환대받는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라는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었으면 한다. 사람은 너무 쉽게 죽을 수 있어서. 이런 이상한 상상은 다소 필수적이다. 어떤 상실은 타개하거나 극복하는 게 불가능하다. 아픔이 닳아가길 기다릴 뿐이고, 그 무엇도 희미해지지 않길 바란다면 시간이 해내는 희석마저 괴로울 뿐이다. 적당한 때에 나누길 계획했던 대화들, 언젠가 꼭 전하려 했던 사과나 감사, 시간이 지나고서 함께 총평하려 했던 소중한 순간들, 그 모든 훗날을 우주가 불시에 앗아갔을 때는 어떡하나. 여태 내가 살아온 방식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도 뭘 특별히 바꾸지는 못해서 늘 먹던 거 먹고 가던 곳에 가 지는 게 사람이다. 다르게 살 방법을 몰라서. 나는 그렇다. 이 영화는 남은 이들끼리 서로 부여잡고 애도하면 어찌저찌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뻔한 이야기다. 내 우주가 뒤집혀도 세상은 단 1초도 멈추지 않는다는 걸 매 순간 상기시키는 그 미친 일상성을 잘 담아냈다. 아들의 죽음 전후를 그려낸 방식도 마음에 든다.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각자의 과제를 심상하게 해치우던 가족들, 500년은 더 살 것처럼 친구들과 해맑게 웃음을 주고받는 하나의 영혼, 저승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게 정확히 언제인지 가늠할 수 없어서 더 아픈. 농구 경기를 뛰고 있던 딸의 미소가 순식간에 시름으로 바뀌는 장면을 돌려봤다. 살면서 딸에게 말해준 것들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준비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곧 들려줘야 할 아빠의 눈동자가 이미 모든 걸 전달한. 슬픈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