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chan

chan

4 years ag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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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

영화 ・ 2022

평균 2.5

전체주의적 희생을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는, 위험한 사회드라마. . (스포일러) <비상선언>은 한 편의 장르영화로서 기술적으로 딱히 흠잡을 곳이 없다. 게다가 관객을 러닝타임 내내 이끌어 갈 만한 장르적 재미까지 보장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 쏟아지고 있는 수많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본적으로 <비상선언>이 재밌는 영화의 축에 속한다고는 생각한다. 불필요한 서브스토리 탓에 과하게 늘어진 감이 없지 않다만 적어도 영화가 2시간 20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결국엔 그 수많은 혹평의 반열에 합류해야만 할 것 같다. 이유인즉슨 <비상선언>은 제 스스로 장르영화 그 너머의 사회드라마를 희망한 영화인데 그 사회드라마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큰 패착을 보였기 때문이다. . <비상선언>에서 크게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두 가지다. 첫째로는 영화가 임시완배우가 연기한 테러범을 지나치게 일찍 퇴장시키는 설정을 취했다는 것이며, 둘째론 그 테러의 형태가 폭파물, 하이재킹 따위가 아닌 전염성을 가진 생화학 테러의 형태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테러 대 인질이라는 장르적 구도를 손쉽게 포기한 것과 더불어 수많은 테러의 형식 중 전염이라는 키워드가 부각되는 생화학 테러를 택한 영화의 선택은 하나의 지향점을 가리킨다. <비상선언>은 테러범과의 대결이 가져다주는 장르적 쾌감에 매혹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비행기를 일종의 사회실험실로 치환하여 모종의 사회적 함의를 전달하리라 다짐한 영화인 것이다. 영화의 의도가 그렇기도 한 것 뿐더러 지긋지긋한 펜데믹 시기를 겪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에 내재된 사회적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말일 것이다. . 많은 이들이 지적한대로 <비상선언>은 테러범 류진석이 퇴장한 이후로 급격히 방향을 잃고 추락한다. 류진석의 싸이코패스적인 면모에서 기인하는 서스펜스를 만끽하던 관객은 이후의 전개를 지켜보며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다. 펜데믹 이전에 제작된 <비상선언>은 펜데믹을 몸소 경험한 관객들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이브하고 피상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설파한다. . 우선 이 영화를 판단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부분이라고까지는 생각되지 않지만 어찌됐든 영화 밖에서 갑론을박이 거센 이 영화를 둘러싼 반미, 반일 혐의에 대해 사견을 덧붙이고 시작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가 반미, 반일 정서를 조장하는 영화까지는 아닌 것 같다. 다만 동시에 이 영화가 그러한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잠시 영화 내부로 들어가 영화의 설정을 복기해 본다. 앞서 극중 비행기는 미국에서 착륙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타국에서 역시 착륙허가를 받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헌데 영화는 여기서 갑자기 부기장의 악화된 몸상태를 구실로 구태여 일본으로 향한다. 그리고 냉전시대에서나 볼법한 현실적 설득력이 심히 떨어지는 항공전투장면까지 삽입한다. 물론 영화는 미국과 일본이 착륙을 허가하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를 설명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다.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설명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한편으론 이 영화에 한국과 일본 양국 간의 불편한 감정을 상업적으로 아주 얄팍하게 이용해 먹으려는 간악한 저의가 있었다고 본다. 일본에 대한 한국관객들의 즉각적인 분노, 해당 장면에 담긴 가치는 그것이 전부다. 영화를 재차 재고해봐도 불필요한 에피소드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드며 상상력의 고갈이 낳은 안이한 작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 일본 에피소드가 상상력의 빈곤을 여실히 드러냈다면,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그 발상이 너무나도 황당해서 부정적 의미에서 감탄스럽다. 백신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비행기가 진퇴양난의 상태에 놓이자 기내의 승객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결론, 국민을 위해 우리가 희생하자. 영화를 본 대다수의 관객들은 영화의 이러한 설정에 반기를 표하는 중인데, 나는 그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집단의 안위를 위해 무고한 소수자들이 스스로 희생을 자처하고, 영화가 그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을 은근슬쩍 악으로 묘사하는 것에 이어 그 희생에 숭고함까지 불어넣는 순간, <비상선언>은 전체주의적 메시지를 품은 위험한 사회영화가 된다. 여기서 도무지 견디기 힘든 순간은 바로 영화가 이러한 함의를 전달하는 도구로 무구한 아이의 입을 빌린다는 것이다. 극중 재혁의 딸은 자신이 앓고 있는 피부병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에 찌든 아이다. 영화는 끝까지 아이의 피해의식을 치유해주지 않는다. 역으로 아이로 하여금 집단자살을 하자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하도록 한다. <비상선언>은 위험한 메시지를 언더도그마라는 위험한 경로를 통해 전달한다. 영화 속 지나치게 예민하며 다른 승객들을 모질게 대한 그 남성은 과연 악인이었을까. 적어도 영화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눈에 가장 인간의 본질적 디폴트에 가까웠던 그 남성은 영화 내내 전형적인 악역으로 오용됐다. . 지상에서 역시 납득하기 힘든 설정이 이어진다. 이대로 부인을 보낼 수 없다며 바이러스를 자신의 몸에 투여하는 인호의 선택은 송강호의 능란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설득이 되지 않는다. <비상선언>의 스토리는 과할 정도로 인호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부터 국내착륙허가를 위한 명분을 마련하기까지, 이 모든 게 인호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인호의 영웅적 면모에서 다른 부분은 다 차치하더라도 여기서 그의 희생이라는 설정만큼은 기내의 상황과 너무나도 유사한 구석이 있기에 묘한 불편함이 남는다. 다시 한 번 <비상선언>은 집단을 위해 죄 없는 개인이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을 조성하는데 문제는 영화가 그 딜레마 앞에 선 인물의 고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인호는 마치 죽고 싶어 환장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거침없이 달려들어가 자신의 몸에 바이러스를 주사한다. 이유인즉슨 <비상선언>은 앞선 기내에서의 상황처럼 인간에겐 집단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할만한 영웅적 능력이 내재돼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나이브한 사회진단이다. 영화는 인호를 대단한 배포를 가진 특별한 인간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한 명의 회사원으로 묘사한다. 그러기에 <비상선언>의 의도는 더더욱 불순하다. . 비상선언은 세 인물의 영웅적 결단을 통해 해피엔딩으로 종결된다. 목숨을 건 인호의 결단과 커리어를 건 숙희의 결단, 그리고 트라우마를 극복한 재혁의 결단을 통해서 말이다. <비상선언>의 해피엔딩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한 저마다의 프로페셔널함이 아닌 집단을 위한 개인의 비현실적인 희생과 영웅적 면모를 통해 완성된다. 승객들의 집단자살 계획은 결국 실행되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집단을 위해 희생할만한 영웅적 기질이 있음을 말하며 그것이 희망임을 웅변한다. 과연 그것은 희망일까? 나는 자신할 수 있다. 이건 창작자의 명백한 시대착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