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young_Wonly
보고싶어요

백설공주
평균 2.0
인어공주에 이어 백설공주까지 캐스팅 미스라며 조롱받고 있다. 일부가 지적하는 원작 파괴에 대해 한 번만 다시 짚고 가자면.. 하나는 덴마크 동화, 다른 하나는 독일권 민담이 원작이라는 점이다. 우선 인어공주는 원작이 새드엔딩이고, 인어공주가 백인이라는 언급조차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피엔딩과 백인 인어공주는 디즈니가 강행한 원작 설정 파괴다. 그렇지만 누구도 안데르센 원작을 모욕했다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까지 않는다.(아주 아주 아주 드물다.) 이후 디즈니가 인어공주 실사화 계획과 캐스팅 결정안을 공개하자, PC는 둘째치고 인어공주를 맡은 배우의 인종부터 생김새까지 못하는 말들이 없었다. 디즈니 애니 세대들이 빨간머리 백인 캐릭터에 익숙하듯이, 만일 디즈니 실사 영화가 2030 어른들의 죠랄을 딛고 성공한다면 자연스럽게 인어공주의 다양한 모습을 상상하며 자랄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들어져야 한다.(자기 추억을 짓밟고 얼마나 잘 만들지 두고보자며 벼루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닌) 언젠가 아이들이 인어공주를 보면서 '바다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데 왜 피부가 안 타죠?' 라며 비과학적인(?) 재현을 트집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백설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왜 백설공주가 콜롬비아계여야 하는가? 백설(白雪) 뜻을 모르는가? 질문 설정이 시작부터 잘못됐다. 서양 동화에는 왜 공주와 왕자의 이야기가 많았을까부터 물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왜 왕자들은 국경을 넘어 싸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왜 공주들과의 첫 만남부터 결혼을 생각할까. 아시다시피 동화의 시작은 민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각 지역 특색에 맞게, 상황에 맞게 구전되어온 이름 모를 이야기들. 순수 상상만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판타지란 없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중세 이전부터 유럽은 작은 나라(부족)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중 독일어권 지역만 따져도 나라가 300여 개에 달했다.(백설 공주 원작 독일의 그림 형제 동화) 나라에서는 늘 상속이 문제였다. 아기를 낳아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일단 낳을 수 있는대로 많이 낳아야 했다. 그렇게 장남이 건강히 태어난 경우 그 이유만으로도 무조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뒤늦게 태어나 생존한 아들들은 본의 아니게 제 살길을 찾아야 했다. 명색이 왕족의 자식이니, 장남이 아니더라도 성인이 될 때까지 허드렛일이나 노동을 해볼 기회나 호기심은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들도 그런 권력과 지위만을 믿고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제일 큰 형에게 모든 권한이 몰려버리고 자기들은 의미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다니.. 갑갑했을테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으나, 왕족과 귀족들 중 아무도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주거나 조언해주는 이가 없었다. 그저 천하게 태어난 하층민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비참한지를 떠들며 허례허식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으니 왕자들은 결국 최선이자 최후의 수단을 꿈꾼다. 인생역전, 즉 한 나라의 왕이 될 기회는 차남, 삼남에게도 있었다. 다른 나라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란한 말솜씨와 기사도를 수련했다. (외모는 이미 갖춰진 상태?) 마침내 떠나는 날, 왕자들은 생애 가장 완벽한 스타일링과 보석으로 치장된 칼(노잣돈/비상금)을 허리춤에 차고 깨끗하게 관리된 하얀 말 위에 올라탄다. 설령 거울의 가벼운 입놀림 때문에 저주를 받고 쫓겨나 독사과까지 먹은 이웃나라 공주가 제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백년 동안 잠만 자고 있는 공주일지라도, 단 하루 화려한 드레스를 대여해 입고 공주로 위장한 하층민 소녀일지라도! 인생 '한방' 역전을 위해 백마에서 내려와 사랑과 열정이 끊임없이 솟는 척 키스를 해야했다. 소년소녀들이 꿈꿔온 백마 탄 왕자란.. 아.. 그것은 결국 도박 기질이 다분한 백마 탄 백수였다.(물론 개드립임미다.) 지금에서는 백설이 아니라며 아우성이지만, 한때 오히려 백설공주라는 이름이 잘못됐다고 따지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림 형제가 모아둔 민담들을 현대 동화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필요한 덧붙임' 때문에 원본이 훼손됐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이었다.(지금이랑 다를 게 없..읍) 그들의 주장은 원작(그림 동화) 속 새하얀 눈 아이를 백설 '공주'로, 못돼먹은 여자를 왕비로 옮기고, 눈처럼 새하얀, 피처럼 붉은 이란 표현에 살결과 입술이 덧붙여진 것과 잔혹한 장면들을 고의로 삭제하는 건 원전 문학성을 해친다는 것이었다. 즉 성인용이 아동용으로 수정되면서 이루어진 '적응과 순화'가 작품성을 훼손한다는 얘기였다. '적응과 순화'는 국경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수출될 때 흔히 일어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동화와 해외 민담들은 이 같은 과정을 모두 거쳐온 것이다. 19세기 초 제작된 그림 형제의 동화(민담집)가 잔혹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건 이제 어느정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을 그대로 아이들에게까지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순화할 것인가는 어른들의 결정에 달려있는 문제다. 좋은(착한) 것과 나쁜 것, 천사와 악마. 순진무구한 동심은 전자 편에 서있고, 욕심 많고 말썽만 잔뜩 일으키는 고약함은 후자 편에 선다. 아이들은 이 양쪽을 오락가락하며 자라난다.(우리도 그랬다. 사실 다 컸다고 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유독 착한 면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나길 원하게 된다. 내 아이가 잘못되면 다른 아이들의 문제처럼 보이는 게 부모이기도 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착하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는 게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게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훈육과 사랑이 무쓸모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훈육(위협과 공포, 불안), 사랑(보살핌과 보상)이 없다면 인간은 야생의 동물보다 훨씬 더 자연(自然)스러워질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어른들은 반드시 아이들에게 사랑이든 훈육이든 위협이든 보호든 뭐든 베푼다. 베풂 없이는 교육도 없다. 베풀지 않아도 아이들이 저절로 선하게 변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도덕 윤리를 깨우칠 거란 '믿음'은 착각이다. 백설공주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멀리 떨어져야 했지만, 7명의 드워프들과 동식물 친구들의 보살핌 속에 아름다운 인간으로서 커 나간다. 이런 이야기에 인종과 생김새가 뭣이 그리 중할까?! 중요하다. 문학과 예술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이니까. 잔혹 동화만의 외설과 폭력, 왜곡과 과장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들, 동화(민담)가 담고 있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동화가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더라도 기록자(구술자)의 역사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록 현실 아닌 현실을 만들어내더라도, 결국 우리 눈 앞의 현실을 기억하기를 요구한다. 그게 이야기가 퍼져가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하고, 외설과 폭력이 어른들만의 전유물이라고 판단해 무작정 가리기에 급급한 것도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자기들끼리 어둠의 문단(文壇)을 만들지말란 법은 없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때가 되면 알아서 그만두고 깨우치겠지라고 착각해 방치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잔혹 동화와 패러디 동화가 성행하는 이유도 한 번 생각해보자. 왜 이렇게 잔혹 동화에 매료될까. 그 답은 각자가 지고 있는 지옥 같은 현실 세계에 있다. 문학은 현실을 다룬다. 때론 현실을 넘어서, 현실을 반영해주기도 한다. 그런 게 꼭 필요할 때가 있기도 하다. 현실을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문학은 현실을 감싸안을 만큼 거대한 가상현실을 상상해낸다. 누구도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도록.(자세한 건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