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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위서

한위서

4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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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 이야기

책 ・ 2014

평균 3.5

모두 팔은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인형극을 공연하는 사람이 끈 달린 인형의 팔을 들어 올리듯 라디오가 우리 팔을 잡아당겼다. 눈이 없는 라디오 앞에 그렇게 서서 우리는 노래를 부르거나 부르는 척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른 사람의 비밀경찰이었다. 첫날 완장을 받았을 때 거부해야 했을까? 그 자리에서 이런 것은 차지 않겠다고 말한 다음 짓밟아야 했을까? 하지만 그건 무모했을테고 더 나아가 우스꽝스러웠을 테지. 그건 내가 파리 대신 수용소에 간다는 것을 뜻했을 거야. 사법시험을 치겠다고 아버지한테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할 테고. 어쩌면 거기서 죽을 테지. 헛되이. 돈키호테처럼 행동한 탓에, 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어리석은 일이야. 여기선 다들 완장을 차는데. 그리고 난 '사적으로' 나랑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내가 난리를 쳤다면 그 사람들은 어깨만 으쓱했을걸. 지금은 그냥 완장을 차는 게 나아. 그럼 나는 자유롭고 나중에 이 자유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총을 쏘는 법이나 잘 배워둬야지. 그럼 나중에 좋은 일을 위해 필요할 때 총을 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아래 결코 잠잠해지지 않는 목소리가 있었다. 다 소용없어. 넌 완장을 찼는걸. 끙끙거리면서 어떻게든 생각을 그만두려고 애썼다. 내가 정말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훈련소에 절대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동료애라는 덫에 걸려 있었다. 동료애는 전쟁에 속한다. 동료애는 알코올처럼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동료애는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수 있게 해준다. 죽음과 더러움과 궁핍함을 견디도록 도와준다. 동료애는 마취시킨다. 문명의 편리함을 모두 잃어버린 것도 위로해준다. 이런 상실 자체가 동료애의 전제 조건이다. 동료애는 끔찍한 곤궁과 쓰라린 희생을 통해 거룩해진다. 동료애가 이런 곤궁과 희생에서 떨어져 나와 오직 그 향유와 마취만을 위해 그리고 오직 그 자체만을 위해 찾아지고 실행된다면 동료애는 악덕이 된다. 동료애가 우리를 한동안 행복하게 만든다고 해도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동료애는 어떤 알코올이나 아편보다 더 인간을 망가뜨리고 타락시킨다. 인간이 스스로 책임지면서 정상적이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동료애는 사실 미개화의 도구다. 나치는 독일인을 동료애라는 오입질로 유혹해서 이 민족의 수준을 그 무엇보다 더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