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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鬱林

울림鬱林

4 month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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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의 기술

책 ・ 2020

평균 3.7

<다큐의 기술>은 1982년부터 30여년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김옥영 작가가 '무엇이 다큐멘터리인가?'를 묻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세계 각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나 또한 언젠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혹은 배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일단 다큐멘터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겠단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이 포괄하는 개념은 다큐멘터리라는 영역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개론서'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면은 일반적인 개론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기획-촬영-편집'으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개론서와 달리, 이 책은 다큐멘터리의 개념을 정의하고, 그 의미와 한계를 제시하는데 많은 분량을 소모한다. 나로선 이 앞부분이 책 속의 다른 형식적 이론들보다 훨씬 인상깊었다. 살짝 이야기를 돌아가자면, 최근에 나는 영화 포스터를 공부하고 또 제작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미 디자인 업계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보고, 또 그중에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저장했다. 그러던 중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인상을 받을까?'라는 생각에 주변인들에게 내가 저장한 포스터들을 보여주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모든 지인들이 하나의 포스터를 보고도 전부 다른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누군가에겐 '최악'의 포스터가 누군가에겐 '최고'의 포스터가 되었다. 또 누군가는 훑어넘기는 포스터를 누군가는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고른 '최고의 포스터' 중 겹치는 작품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 이게 예술이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저자가 설명한 '다큐멘터리'의 개념 역시 내가 생각하는 '영화 포스터'라는 분야와 매우 닮아있었다. 다큐멘터리와 포스터 제작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내가 본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포스터 디자이너는 영화를 보고, 영화 속에서 자신이 발견한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고자 이를 시각예술로 옮긴다. 다큐멘터리스트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현실에서 본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고자 이를 시청각예술인 영화로 옮긴다. 그리고 두 직업엔 필수적인 목표가 따른다. 바로 '설득'이다. 디자이너는 '이 영화를 봐주세요'라고 사람들을 설득해야만 하고, 다큐멘터리스트는 '이 현실을 봐주세요'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크고작은 파란을 일으키는 역할. 그게 바로 디자이너와 다큐멘터리와 같은 예술가의 의무인 것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스트는 디자이너보다 더 막중한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이 현실을 봐주세요'를 넘어서, '이 현실을 바꿔주세요'라고 말한다. 아마 그것이 가장 현실과 가까운 예술로 인식되는 다큐멘터리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설명한다. 현실을 바꿔야한다는 생각은 감독이 일방적으로 주입해야하는 게 아니란 것이다. 관객이 주체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품게끔 이끌어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화가 이를 호소해서'가 아닌 '내가 이렇게 생각했으니까'라고 믿게끔 만드는 것.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다큐멘터리라고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 설명한다. 이후의 내용은 '그런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기술에 대한 해설이었다. 이 책은 단지 '다큐멘터리'에 관한 지침서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의 주제의식과 개론은 모든 사회적 예술 분야에 적용이 가능할 정도로 그 통찰이 정말 깊었다. 이를 밑거름으로 삼아 나도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만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