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효능

테라피스트
평균 3.3
<1> 사실과 사실의 틈새를 벌리는 왜곡된 믿음. <2> <테라피스트>는 주택단지 ‘서클’로 앨리스와 레오 커플이 이사를 오면서 시작한다. 친근하면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웃들, 다소 신경질적일 정도로 폐쇄성을 띠는 레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성까지…서클 곳곳에서 형용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던 중, 앨리스는 이사온 집에서 최근 누군가 살해당했다는 걸 알게된다. 그렇게 연결되지 않은 첫 번째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3> 작은 계기를 시작으로 멈춰있던 사건의 톱니바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앨리스는 하나의 단서를 얻을 때마다 동시에 더 많은 의문이 생기는 혼란의 중심으로 나아간다. 독자는 앨리스가 서클을 뒤덮은 살인사건의 악취를 걷어낼 때마다 범인의 가능성을 좁혀보지만, 한편으로는 앨리스를 포함해 모든 인물들에게서 미심쩍은 과거가 하나 둘 드러날 때마다 확신을 잃게 된다. <4> 여타 스릴러소설과는 다르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에 대한 두려움보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서클 주민을 중심으로 진실의 편린을 얻을 때마다 다가오는 혼란의의 크기가 더 컸다. 다시 말해,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밀을 한 꺼풀 벗길 때마다 믿음은 의심과 불신으로, 끝내는 두려운 존재로 발전되는 흐름이 심리스릴러적 요소로 여겨졌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우리 역시 때때로 겹겹이 쌓인 우연을 운명으로 해석하며, 너무나도 쉽게 상대에게 마음을 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실제 상대의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이면의 악의를 보지 못한 채 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체온을 공유하는 것이다. <5> 사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는, 앨리스의 존재도 어딘가 꺼림직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을뿐더러, 죽은 가족의 이름과 살인사건 피해자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망설임 없이 죽은 가족을 구실로 이웃에게서 동정심을 유발하며 정보를 얻는 행동이 정상적으로 다가오진 않았기 때문이다. 좋게 표현하면 소중한 가족에 대한 애착과 호기심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상대방의 불쾌함도 개의치 않고 집요하게 캐묻는 강박증 환자처럼 보였다.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존재가 주인공이니, 독자로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할 리는 만무했다. 만일 나의 배우자가 매일 밤이 되면 인기척이 느껴진다고 주장하면, 과연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믿어줄 수 있을까. 상대에겐 엄연한 진실이지만 나에겐 마치 망상장애같은 그 상황을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애초에 앨리스도 그렇고, 정 불안하면 왜 실내에 임시 CCTV를 설치하지 않는 걸까...) <6> 그나저나 얼마나 많은 연인과 부부들이 서로에게 평생 숨겨야 할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사람은 제각기 숨기고 싶은 과거 한 둘 정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비밀의 내용이 정도를 지나쳐 상대에게 두려움마저 가져다줄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나였다면 그런 과거를 드러내도 사랑이 유지될 거라 자신할 수 있을지, 혹은 반대로 상대의 과거를 알게 되어 세상 모두가 그를 떠나도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을지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려웠다. 분명한 건 연인 사이에 비밀이나 거짓말은 한 번 시작하면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낳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시작된 거짓말이 마지막 선을 넘어 들통 나게되면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을 만큼 거짓에 익숙해져 있고 말 것이다. 그런 사람을 그 누가 믿고 사랑할 수 있을까. <7> 사건의 실마리를 파악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인물과 무의미한(?) 교류가 계속해서 반복되다보니 중간에 흥미를 잃었다. 물론 꾸역꾸역 마지막까지 읽었으나, 고작 이런 진실과 반전을 위해 우리들의 긴 시간이 낭비되는 게 맞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