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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오세일

2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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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리안

영화 ・ 1969

평균 3.6

언제부턴가 알랭 들롱이 주연인 누아르 영화를 볼 때면, 항상 <사무라이>나 <암흑가의 세 사람>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실리안>은 장 피에르 멜빌 식의 과묵한 연출이 아닌, 배경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사뭇 다른 무드의 범죄물을 지향한다. 보석상을 털 계획을 세우다가도 눈앞의 장난감 가게를 보며 잠시 손자의 생각을 하기도 하는 두 명의 늙은 마피아. 하지만 손자에 대한 사랑마저 매몰차게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끝내 둘은 장난감 가게라는 가족적인 정서를 품은 공간에서마저도 범죄의 정신을 버려내지 못한다. 결국 그들에겐 가족보단 돈이 먼저였던 것일까. 역사에 따르면 돈을 필두로 뭉친 가족의 연대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할 운명이 아니던가. 어쨌든 이 모든 사건의 결말은 한 아이의 순수함이 몰고 온 비극이다. 우연히 외숙모와 싸르테의 정사 현장을 목격하게 된 아이. 아이의 순수한 내면은 거짓말이라는 비도덕적 행위를 거부한다. 그래서 아이는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그 한마디에 모든 어른들의 삶은 보란 듯이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언젠간 그 아이도 그때 거짓말을 부탁해야만 했던 외숙모의 심정을 이해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이의 순수함을 지켜줄 수 없는 세상. 어른들의 어두운 욕망으로 빚어진 사회의 이면. 서스펜스의 짜릿함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허무주의. 그들의 계획을 모두 지켜본 관객으로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는 엔딩일지라도, 이것이 바로 현실에선 옳게 된 권선징악이다. 알랭 들롱을 보고 이끌리게 된 영화이지만, 의외로 리노 벤투라가 더욱 눈에 띄었다. 물론 알랭 들롱, 장 가뱅, 리노 벤투라의 협업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배우진이지만, 리노 벤투라가 연기한 고프라는 형사의 인물상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달까. 어쩌면 담배 한 개비로 설명이 되는 인물. 담배를 끊었지만 자꾸만 피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불을 붙이지 않는 채로 입에 물고만 있는 버릇을 지닌 존재. 그리고 동시에 사건의 해결에 대한 집착(직업 정신)과 중후한 카리스마를 겸비한 존재. 하지만 계속해서 잡히지 않는 싸르테 때문에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는 나약한 면도 있는 존재. 아무래도 범죄자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형사의 존재가 이토록 크게 다가오는 구조라니, 상당히 매력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