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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영화볼 돈은 있지만 팝콘 사먹을 돈은 없던 나는 깊은 고민 끝에 스스로 '흰긴수염고래 수확법'이라고 이름붙인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팝콘을 먹을 수 있었다. 거창한 이름이지만 의외로 방법은 간단하다. 그 방도가 무엇인고 하면, 바로 극장에서 상영하는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를 골라서 꽉찬 좌석 바로 뒤를 예매해 앉는 것이다. 그리고 깜놀 장면이 나올 것 같은 타이밍에 적당히 입을 벌리면 앞자리 관객이 놀라서 날려보낸 팝콘들은 태평양의 크릴새우들이 흰긴수염고래의 입 속으로 빨려들듯이 내 입에 도달하는 것이다. 앞사람이 잘 놀랄수록, 영화가 무서울수록 팝콘수확량은 배가 되었다. 그리고 개똥에도 위아래가 있다고 했었던가, 당연 그 중에서도 정말 많은 팝콘을 선사하는 영화들이 있었다. '컨저링', '인시디어스', '더 위치'.. 이런 띵작 공포영화를 볼때면 두시간동안 수십번은 내 면전에 끼얹어지는 하이얀 팝콘들... 시간이 지나 덥고 무료한 여름 밤, 시간도 남길래 오랜만에 롯데시네마에서 <애나벨>이라는 공포영화를 봤다. 그리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 뺨을 스치는 팝콘 한조각에 나는 잊고 지내던 흰긴수염고래 수확법을 다시금 기억했다. 어리고 가난했던 나의, 가까스로 존재할 수 있었던 극장 나들이에 대한 근원적 노스탤지어...... 이내 잠시간의 회상에 흠뻑 젖은 나는 '그래 까짓거 즐겨주마' 라는 마인드로 나는 입을 벌리고 또 벌렸다. 그 안으로 쳐들어오는 오리지널, 카라멜, 어니언, 다양한 맛의 팝콘들이 만들어내는 맛과 추억의 파노라마... 러닝타임동안의 감격의 영화감상이 끝나자 나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이 5점은 영화가 아닌 나를 눈물흘리게 만든 롯데시네마 팝콘돌이에게 주는 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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