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의 머리말에서 정희진은 기존의 언어가 모두 남성의 언어이므로 여성의 삶과 기존의 언어는 불일치한다고 말한다. 이는 남성/여성이라는 범주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젠더퀴어 및 그 앨라이들(이하 트랜스젠더퀴어로 통칭)의 언어와 트랜스 배제 페미니스트들의 언어는 다른 결을 갖는다. 트랜스젠더퀴어의 존재를 ‘젠더론’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로 치환해 지지하니 마니 하는 문제에 한해 트랜스 배제 페미니스트들의 언어는 상징계의 질서를 따른다. 다시 말해, 트랜스젠더퀴어의 존재/비존재를 검증하려 할 때 그들의 언어는 기득권의 언어다. 이에 반해 트랜스젠더퀴어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트랜스 배제 페미니스트들이 종종 “나는 치마가 입고 싶어서, 화장을 하고 싶어서 여성이 되었다”는 트랜스여성 자신의 ‘여성됨’에 대한 서술/증언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 정말로 모든 트랜스여성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제쳐 두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말하기란 (그들 자신의 언어가 아닌 기존의 언어로 불충분히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나 분열적이거나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로맨틱이 기본값으로 설정된 사회에서 트랜스젠더퀴어만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증명’하도록 요구받는다. 트랜스 배제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젠더퀴어의 존재가 시스젠더와 달리 ‘인공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면 그것은 ‘허구’라고 말하지만, 『남성성과 젠더』에서 루인은 의학이 어떻게 지식으로서 권위를 획득하는지 설명하면서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의학을 통해 생식기의 판별 상태를 전환한 것이므로 인공적이라면, 사실 태어나자마자 의학의 생식기 판별을 거쳐 남아 혹은 여아로 명명되는 우리 모두의 존재는 인공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을 트랜스 배제 페미니스트들이 ‘젠더론’이라는 단어를 만들게 된 결정적 이유일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에 기초해 다시 말하면, 우리가 ‘생물학적 성별’이라고 여기는 섹스도 사실 이미 젠더이며 생물학적 차이라고 여기는 것은 곧 사회적으로 구성된 차이다. ‘여성’이라는 젠더 수행 뒤의 수행자(여성 이전의 여성), 젠더 이전의 섹스란 없다. 남성성과 반대되는 여성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남성성은 남성 본연의 것이거나 여성성 또한 여성 본연의 것이 아니며, 여성성의 발생 기원을 역추적하면 남성성을 찾을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권력을 탈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역시 잘못된 것이다. 남성성을 “보편화의 욕망”으로서 비판할 것이 아니라 “남성적 보편”으로 읽고, 이러한 보편은 어떻게 생겨나는지, 누가 혹은 무엇이 그들에 보편이라는 위치를 부여하는지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만 단순한 자리 바꾸기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