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캄파넬라

캄파넬라

8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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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들

영화 ・ 2016

평균 3.6

(<어떤 여자들> 비롯 켈리 라이카트 영화 전반의 내용을 포함합니다.) 고정된 지위에서 서성이는 여성들, <어떤 여자들> 켈리 라이카트의 <웬디와 루시>(2008)가 혼자 이동을 계속해야 하는 웬디가 오리건의 화물 기차에 탑승하면서 막이 내려갔다면, 몬태나주로 장소를 옮겨온 <어떤 여자들>(2016)은 프레임의 끝자락에서 천천히 철도 길로 진입하는 기차를 비추며 포문을 연다. 이 기차는 웬디와 안착한 곳에서도 끝나지 않는 문제들을 헤쳐나가야 할 <어떤 여자들>의 여성들을 연잇는 듯하다. 철도 길을 지나가는 기차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방향성은 있고 목적지에 언젠가 도달하여 멈추겠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명시되지 않는다. 길 위를 무한정 왕복할 기차는 라이카트 영화의 계속되는 삶을 표상하는 것 같다. 한편 일자리와 안식처를 부여받지 못해 떠돌아야 했던 라이카트 전작의 인물들과 달리 <어떤 여자들>의 여성들은 의식주 해결을 위해 떠나는 모험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이런 고정점의 존재가 문제없는 삶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고정된 상황이 역으로 그들을 옭아매며, 권태롭게 반복하는 일상을 추동하기도 한다. 몬태나주의 반경에 맞닿아 있는 여자들은 자신을 옥죄어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혹은 혈혈단신으로 유리된 채 고립되어 있다. 각기 다른 처지에 놓인 여성들은 서로와 완연히 분리된 것 같으면서도 이들의 삶을 교차하는 지점들을 겹쳐 보게 한다. ‘어떤 여자들’ 중에서 로라 웰스(로라 던)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는 전문 변호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나 이 직업은 의뢰하는 고객들의 말을 우선 들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수시로 자신을 찾아오는 의뢰인 퓰러(재러드 해리스)로 인해 고초를 겪는 로라의 문제는 건물 내부 장소인 사무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밖을 나온 차 안에서도 고난은 확장된다. 승소 가능성이 희박했던 문제로 아내와도 소원해져 발 둘 곳 없는 퓰러는 불쑥 로라의 차에 합승한다. 도로를 질주하는 무수한 영화의 차는 해방의 수단, 안전과 자유의 공간 등 수많은 의미를 부여받곤 한다. 하지만 라이카트 영화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차는 곤궁한 인물을 운송하는 수단에 불과해 보인다. 인물의 느린 보폭을 쏙 빼닮고 그들의 피로가 스며든 듯하다. 잠시 휴식을 위한 여행을 가능케 하는 <올드 조이>의 차의 움직임조차 주인공들의 노곤함을 체화한 듯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차는 위태로운 공간이 되기도 한다. <초원의 강>의 후반부 차 안에서 코지는 짐 같은 존재가 된 리에 총을 격발한다. 제목같이 밤 장면이 주를 이루는 <어둠 속에서>에서 차는 야간에 은밀히 활동해야 하는 자들의 음습함이 깃든 공간이며, 조쉬(제시 아이젠버그)의 동승만으로 디나(다코타 패닝)에게 위협이 되는 공간이다. <어떤 여자들>에서 로라의 차는 상대인 퓰러가 내뱉는 일방적인 신세 한탄을 들어줘야만 하는 밀폐된 공간이 된다. 오밤중에 급기야 퓰러는 또 다른 밀폐된 장소인 건물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난동을 피운다. 몰래 빠져나오기 위한 잔머리를 꿴 퓰러는 자신을 직접 마주하라며 경찰에게 지시받고 들어온 로라에게 계획에 동조하길 강요하지만,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 곧바로 체포되면서 사건은 허무하게 일단락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다시 할 말을 잃은 채 현장을 지켜만 봐야 하는 로라의 황망한 표정이다. 난제 앞에서 골머리를 앓는 로라를 뒤로한 채 이어지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미셸 윌리엄스는 지나 루이스의 모습으로 또다시 등장한다. <웬디와 루시>에서 웬디의 걷기가 불안했다면 한적한 숲에서 지나의 걸음은 한결 가볍고 편안해 보인다. 앞서 오리건에서 알래스카로 향하려다 사막에서 방향마저 잃고 안착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미셸은 몬태나의 지나로 정착하려 한다. 이제 미셸에게 필요한 건 안정이다. 하지만 지나는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관계에서 고립되어 있다. 그는 집에서 가장격이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 딸은 대화를 거부하며 남편 라이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웬디나 에밀리와 달리 지나에겐 방책이 있다. 어떤 사암을 모아 새로운 정착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사암은 지나와 라이언과 알고 지내는 노인 알버트의 소유며 그의 집 앞에서 긴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흔적이다. 그런데 이 구도는 <웬디와 루시>의 노인 월터와 웬디를 연상케 한다. 주차 구역에 혼자 서서 자리를 지키는 경비 월터에겐 홀리라는 여성이 있으나 홀로 부랑하는 웬디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웬디는 떠나야 했으나 노인 월터는 자신의 터전을 지킬 것이다. 이제 위치가 바뀌어 노인은 혼자고 미셸에겐 가족이 있다. 이번엔 정착해야 하는 지나가 들어서고 노인 로버트는 물러서야 한다. 쌓인 사암들을 들춰내는 일은 알버트에게는 자신의 퇴적된 역사를 들어내는 과정이지만, 지나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다. 사암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굳게 입을 다문 지나가 창밖에 시선을 둘 때 변화가 자리할 땅이 비친다. 이후 집 짓기를 위해 사암을 옮기는 작업을 시행하는 장면에선 지나의 인사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창가에서 변화하는 대지를 우두커니 바라보는 로버트가 담긴다. 두 인물은 마찬가지로 풍경 앞에서 침묵하지만, 지나는 변화할 풍경에 집중하는 반면 로버트는 변모하는 광경을 씁쓸히 지켜본다. 웬디와 에밀리처럼 지나 또한 풍경을 눈을 두지만, 이제 지나는 풍경에 정착을 앞둔다. 여정은 계속된다 미셸이 지나로 아직 정착을 완료하지 않은 시점에서 라이카트 영화의 탐색은 계속된다. 새로운 얼굴이 등장한다. 제이미(릴리 글래드스톤)는 홀로 목장 일을 도맡아가면서 생계를 꾸린다. 로라나 지나와 달리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혼자인 제이미에게는 타인과의 교류가 더 간절하다. “……신비로운 영역으로” “위험과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탐험을 기다리는 새로운 개척지입니다”. 혼자 끼니를 때우면서 보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외부와 단절된 목장이라는 공간에서 고독을 체화해온 제이미가 새로운 인연을 내심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을 이어가던 와중에 밤에 차를 몰다 우연히 강의실에 들어간 제이미는 학교법 수업을 담당하게 된 엘리자베스 트래비스(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만나게 된다. 소통과 접촉이 불투명했던 이전 에피소드와 달리 엘리자베스와 제이미의 이야기가 감정을 뒤흔든다면, 이들 사이에 일시적이지만 긴밀한 유대감이 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제이미의 제안으로 식당에서 나와 말을 탄 채 엘리자베스와 제이미 두 사람이 천천히 거니는 장면으로 대표된다. 빛과 그림자가 드리우고 또각또각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서로의 몸에 밀착한 둘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졌음을 비추는 그 순간.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더는 장시간을 운전해가며 일과 강의를 병행할 수 없어 왕래가 끊긴다. 이에 낙심하고 강의실을 빠져나온 제이미는 차를 돌려 오직 재회의 가능성만을 좇기 위해 리빙스턴으로 향한다. 앞서 TV에서 흘러나온 음성처럼 그는 엘리자베스를 만나기 위해 새로운 영역을 향한 탐험을 시도하는 셈이다. 제이미는 라이카트 영화를 통틀어서도 독특한 감흥을 불러오는 인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라이카트의 인물 중에서 그는 유일하게 타인과 아무런 접촉 없이 홀로 머무는 사람이고 외부에서 새로운 관계의 길을 찾으려 한다. 돌아보면 라이카트의 사람들은 대개 기존의 관계에서 결핍을 겪고 여정을 이어갈수록 물리적, 심리적으로 관계가 멀어져갔다. <초원의 강>의 코지와 가족, <웬디와 루시>의 웬디와 전화로만 등장하는 언니. <어둠 속에서>처럼 예기치 않은 인명 피해로 세 명의 운동가들이 서로를 멀리하다 조쉬가 디나를 끝내 살해하기도 한다. <초원의 강>의 리, <웬디와 루시>의 월터, <믹의 지름길>의 아메리칸 원주민처럼 새롭게 알게 되는 인연이 있으나 엘리자베스처럼 진득한 감정의 대상은 아니다. 예외적으로 각별한 사이인 <올드 조이>의 두 친구는 오래된 벗이며 이들은 한동안 서로에 멀어져 있었다. <어떤 여자들>의 로라와 지나도 기존에 형성된 관계인 퓰러와 가족으로 인해 번민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모험이 아닌 안정이다. 이에 반해 바깥과의 접촉이 차단된 상태로 혼자 지내던 제이미는 모험이 필요하다. 처음 찾아온 인연인 엘리자베스가 이전에 장거리를 달렸던 것처럼 제이미도 길을 왕복하며 자신이 오가던 활동 반경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밤샘 운전 끝에 도착하여 차 안에서 밤을 보낸 제이미는 아침에 엘리자베스를 만나 멋쩍게 말한다. “일해야 하는데 방해할 뜻은 없어요. 운전하지 않는다면 다시 못 만날 걸 알았거든요. 그건 원치 않았어요. 그게 다예요.” 제이미의 말은 장식이 아니며 행동의 동기에 어떤 수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만 같다. 제이미는 말하자면 떠났다 돌아오기 위해 운전했다. 혹은 운전하기 위해 떠났다 돌아왔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으나 엘리자베스도 이전에 행했을 단순하면서 간명한 왕복 운동. 이 행위에는 잠시나마 관계의 길을 열어준 사람을 보기 위해 떠났다 돌아오는 자취만이 남겨진다. 행위의 목적만을 우직하게 좇았던 제이미는 인연이 이어질 수 없음을 확인한 채 자신의 거처로 복귀하는 길에 졸게 된다. 그가 운전하던 차는 도로를 질주하다 돌연 탈선하여 들판의 펜스를 들이박고 멈춰선다. 목표가 사라진 채 인적 없는 도로를 가로지르다 의도치 않게 방향을 튼 자는 마치 꿈결 속에서 헤매듯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운동은 멈춘다. 이렇게 라이카트의 새로운 인물 역시 길에서 일순간 방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경험을 안겨준 엘리자베스와 재회만을 소망했던 제이미에게 이 여정은 기억될 것이다. 영화를 아우르는 말미에 로라는 한밤에 소동을 벌였다가 체포되어 수감된 퓰러를 면회하고, 지나는 사암들로 집 짓기를 이어나가며, 제이미는 목장으로 돌아온다. 이들의 삶에 틈입했던 일들이 마치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떠돌던 라이카트 전작의 인물들에 비해 터를 잡은 이 여성들은 일견 무탈해 보인다. 퓰러와 차분히 대화를 시도하는 로라, 웬디와 에밀리일 때와 달리 지나로 정착을 앞둔 미셸은 안정을 찾을지 모른다(한편 가족과의 관계는 여전히 미궁이다). 제이미는 다른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건 영화의 구두점 밖이다. <어떤 여자들>은 안온한 삶의 요소에 정착만이 있지 않음을 나지막이 말한다. 정착은 삶의 유일한 의미나 목적이 아니다. 뿌리를 내린 자들 역시 불확실한 삶에서 끝없이 부유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각자 고립되고 처해있는 상황과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은 그저 주어진 몸과 마음의 길을 터벅터벅 또각또각 걸어 나갈 뿐이다. 피로와 권태에 짓눌려오곤 했지만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 이들의 무구한 얼굴과 침묵은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고요히 웅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