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aucoup

내 식탁 위의 개
평균 3.4
출발하기 전날이었다. 밤이 아직 오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문간에 앉아 보랏빛으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산을 마 주 보며 밤을 기다렸다. 밤이 오기를, 다른 누구도 아닌 밤 이 다다르기를 기다리며 나는 생각했다. 씨앗이 맺힌 디기 탈리스 꽃대를 보니 인디언의 신성한 깃털 장식이 떠올라. 고사리 잎이 노랗게 시들었네. 버려진 수많은 덩어리들, 등 과 두개골과 치아, 집 위로 돌출된 빙퇴석* 더미들이 종말 에 가까워진 세상의 혼돈과 파국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비 가 내릴 것 같아. 그러니 내일은 버팔로화를 신고 파카를 입 어야지. 밤이 가까워졌을까? 순간 퇴석의 밀도가 달라졌다. 돌의 굽은 등뼈가 떨어지는 운모 파편에 소스라치더니 순 식간에 절뚝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 그림자 중 하나 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고사리 잎 사이로 기어 오는 그 그림자가 보였다. 그것 은 디기탈리스가 자라난 곳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끊긴 사슬 토막이 눈에 들어왔다. 도망자. 도망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상대를 알아채기 전 그쪽에서 먼저 나를 알아챈 것 같 았다. 그러는 찰나 그것은 사람 키만 한 고사리 뒤로 사라졌 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결국 도망쳐 버렸 다. 나는 상대의 움직임을 더 잘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것은 옆길로 빠졌다가 이제 내 쪽으로 곧장 내려오고 있었다. 열 걸음 거리에서 속도를 늦추고 머뭇거리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꼬질꼬질한 회색 털 뭉치는 굶주린 채 기진맥진해 있었다. 커다란 밤색 눈동자가 시선을 피하지 않 고 눈 깊은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왔 지? 우리는 세상 모든 것에서 멀어져 숲속 한가운데서 살고 있었다. 내 등 뒤로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자. 난 너한테 저혀 관심 없 어, 먹을 것을 주려는 것뿐이야. 그러니 들어와, 들어오렴. 들 어와도 된단다. 미지의 방문자는 다가오기를 거부했다. 넌 어디서 왔니? 여기서 뭘 하고 있어?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작게 속삭였다. 그것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문턱을 넘 었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나를 따라왔 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두려움을 이겼는지, 언제라도 도망갈 채비를 갖춘 채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얼음 연못 위를 걷듯 한 발 한 발 다가와 음식 접시에 발을 걸쳤다. 우리 둘 다 헐떡이고 있었다. 떨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떨고 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