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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받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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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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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은 나무 7은 돌고래

책 ・ 2009

평균 3.8

타자성 他者性 명사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도외시되는 인간의 성질. (→주체-성) 출처: NAVER 국어사전 박상순의 시적 주체는 마음껏 휘둘리는 대로 전시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화자는 언뜻 봤을 때, 기계적인 인간으로 비유되기 쉽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기계는 단단하다. 챗gpt와 긴 논의를 펼쳐본 결과, 그는 내가 말하는 바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그에게는 익숙한 경로와 메커니즘이 있다. 그의 걸음이 나의 걸음과 알맞다고 생각했을 때, 그건 완전히 오산이었다. 타인의 의견을 자신의 기억에 따라 취할 부분만 취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해골 물을 꿀꺽꿀꺽 집어삼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자유도는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생동감 있어 보이는 그림, 인물, 풍경은 비틀려 있는 화자에 의해 왜곡된다. "폐허"에서 진행되는 문장 나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쫓아간다. '있었다'라는 과거형의 동사는 시간성을 부수고 존재할 수 있다. 흩어지는 잠깐의 현재형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과거 혹은 미래로 구분되는 세계에서 완전한 미래의 문장은 없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인격이 들어간 주체의 시선 속에서는 완전한 미래는 불가능하다. 과거의 잔상을 쫓고 비슷한 통사구조가 계속 반복된다. 자전거가 있었다가 세발자전거가 있고 방을 가진 집으로 시선이 넘어가고 여인에게 초점을 맞췄다가 그에게 과거에 자신이 흘린 '여러 개의 방'을 조합하고 뒤이어 등장하는 아저씨를 소유물 취급해보는 것. 이 모든 과정이 불완전한 나를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을 때, '여인'과 '아저씨'는 설령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한번 발견한 대상이고 그와 아무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에게 중요한 인물이다. '여인'과 '아저씨'가 없었으면 이런 사고를 하는 그도 없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잠들면 나는 페달을 밟고 밤의 침묵 위로 구름처럼 떠올렸다'는 일종의 규칙이 시를 장악하고 잠잠한 밤이 그의 페달질로 인해 뒤틀린다. '내 바퀴 아래 밤의 침묵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는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의 바퀴 아래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기적인 포커싱을 자꾸만 바라본다. 이미 화자는 자리를 뜬 지 오래일 수도 있다. 자전거는 이미 아무도 타지 않았고, 자전거는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인물들을 괴롭힌다. 젖꼭지를 이상할 정도로 오래 잡아끌며 그것을 오브제 삼아 따라가는 시선에 어떤 구원적인 물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곳'에 파묻힌 주체는 그를 씻겨내리는 빗속에 몸을 맡기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직접적인 손길은 절대로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주체를 옮겨적어낸 화자는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선과 행위에 온갖 이론을 가져다 붙이며 살아숨쉬게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는 해설자들의 몸짓은 어떤 각도로 봤을 때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어머니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믿음을 일시적인 행위로 표출한다고 그들이 말할 때, 학자들은 마치 신체부위들이 탈부착이라도 가능한 것처럼 웅성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믿음들은 박상순의 시를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그들의 휘적거림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