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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타는제트기

리듬타는제트기

4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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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초상

책 ・ 2006

평균 3.4

90년대의 한국문학은 정말이지 하루키 센세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지영, 박일문등 수많은 작가들이 표절 논란을 일으켰고, 스파게티 만드는 법이나 와이셔츠 다리는 법으로 무려 몇 페이지를 묘사할 정도로 하루키의 문학은 일기적이고 소소했으며, 우리 삶의 따스한 햇살 하나만으로도 글의 소재가 가능할 수 있는 문학적 재료의 역량을 넓게 넓힌 작가이기도 하다.   그 전의 한국문학은 일제치하와 6.25, 그리고 군부시대 독재등으로 조금은 어둡고 무거운 주제들이 만연했는데 그의 등장과 함께 세트로 따라 온 일본 현대소설들이 한국 문학 기호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런 시대적 물결과 달리 나는 고등학생때 랭보나 말라르메, 폴 발레리같은 초현실주의 시와 한국 근대문학인 - 흔히 입시용이라 일컫는 박태준, 김동인 씨 같은 - 책들에 열광했었지만, 우연히 상실의 시대라는 책을 보게 되었고, 무언가 허무하고 독특한 문체에 흠뻑 빠져들어 그 뒤 테엽감는 새 까지의 하루키의 모든 장편과 에세이는 닥치는대로 다 습득하였다.   그 가운데에 깨달은 점이 있었는데, 하루키 문학은 거의 비슷하고, 사건이 심화되어 전개가 어려울때는 환상과 무의식을 결부시키고 인물처리가 어려울때는 자살과 죽음으로 처리하는 식이였다. 연애는 아무 여자나 만나면 밤에 섹스를 하고 나는 그다지 아무 짓도 하지 않은데 여자들은 "당신에게는 뭔가 매력이 있어요."하면서 앵기는 그런 스토리 구조로써 무조건적으로 폭력난사적인 류의 소설과 같이 점점 지겨워졌고, 테엽감는 새 이후로 난 그의 장편과 글은 한 편도 읽지 않았다. 그로 부터 거의 십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인터넷에서 하루키가 재즈 에세이를 냈다는 기사를 읽었다. 소설은 별로였지만 랑겔한스섬의 오후나 슬픈 외국어, 먼 북소리등 그의 에세이는 너무나 마음에 들어한 나로써 - 게다가 장르도 재즈라니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조금의 망설임없이 책 구입을 결정했다.   책을 받았을 때 엄청나게 큰 활자와 글자 간격, 그리고 얇은 페이지에 사치스러운 양장본 표지에 조금 놀랬다. (아마도 가격을 높이려고 한 듯) 책은 약 165페이지도 안되었고, 조금 서운한 점을 밝힌다면 각 뮤지션에 대한 느낌도 일화도 너무나 짧게 나열 되어 있다. 하루키의 재즈에 대한 내공을 깊이 알고 있으므로, 그가 별 생각 없이 에세이를 쓸 것이란 생각은 없다.   에세이 집은 와다 마코토라는 화가의 각 재즈뮤지션의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간단히 재즈 뮤지션을 어떻게 접했는지에 대한 하루키 자신의 회고 혹은 뮤지션의 살아온 프로필을 간단, 정말 과자 봉지 뜯듯이 적어 놓았다. 내가 모르는 뮤지션들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몇몇 아는 뮤지션에 대한 글은 나도 음, 정말 그렇긴 그래. 라는 동조아닌 동조를 하면서 재미있게 읽어 나갔다. 불과 책 한권을 읽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사실 부끄럽지만 사실을 밝히자면 내가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것도 결국 하루키의 영향 때문이다. 그의 각종 소설에 나오는 재즈 뮤지션에 대한 소재 때문에 - 특히 존 콜트레인 -  존 콜트레인의 음반을 시작으로 여러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그 당시 CBS에서 했던 0시의 재즈라는 프로에서 주말에 재즈뮤지션 한 명씩 소개하면서 음악을 들려주었던 그 프로가 내게 정말 도움이 되었다.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를 보면 나가사와 선배가 그런 말을 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었다면 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것처럼 사람에게 비슷한 감상, 혹은 취미, 경험들은 서로에게 동감대를 불러 일으키며 여러가지를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 하루키와 나의 공감대는 무엇일까. 과거 팬으로써 그를 좋아했던 것 말고 지금으로써 동감대를 따지자면 바로 음악에 대한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이 책에서 하루키는 아트블래이키와 재즈메신져의 공연을 처음 본 느낌을 이렇게 말한다.  " 그날 밤에 들었던 음악을 이해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나 다를까, 그 음악은 내겐 너무 어려웠다. 생략)도대체 왜 그렇게 까지 철저하게 멜로디가 파괴되고 왜곡되어야 하나 하고 그 이유와 기준과 필연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생략) 하지만 거기에는 뭔가 내 마음을 날카롭게 꿰뚫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하하하, 하고 큰 웃음이 터져 나와 버렸다. 사실 나도 그랬던 것이였다. 존 콜트레인의 발라드 앨범같은 경우는 멜로디라인이 강하고 서정적이여서 꽤 즐겁게 들었지만,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반의 경우 처음 듣는 순간 - 그도 그럴것이 쿨의 탄생이였으니 - 기괴스럽다 못해 금방이라도 정지 버튼에 손이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참았다. 도대체 이 변박 변주, 알수 없는 괴상한 트럼펫의 외침에 사람들이 빠져들어가는 매력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삶이 꽤나 고통스러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신을 자학하는 느낌을 즐기고도 싶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마일즈 데이비스가 지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중의 한 명이 되었다. 하루키가 느끼었듯 내 가슴에도 뭔가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이 책은 이렇듯 나와 하루키가 공유하고 있는 같은 뮤지션 다른 경험, 비슷한 감상이 어울려져 역시 하루키의 에세이는 나쁘지 않아. 라는 나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 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집에 묵혀두었던 여러 재즈 음반들도 다시 꺼내어 들어보는 계기가 되었기도 하고 말이다.   아참, 와다 마코토 씨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그녀가 그린 루이 암스트롱은 정말 최고였다. 그 웃는 모습과 제스츄어가 정말 똑같아, 똑같아를 연발했다. 제리 물리건의 팬으로써 제리의 일러스트레이터도 훌륭했지만, 역시 영원한 여신 빌리 홀리데이의 머리의 흰 꽃 장식은 비록 그림이지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그런 느낌이였다. 오랫만에 재미있고 기분전환이 되며 옛날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에세이를 만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