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kari_min

kari_min

4 years ago

3.5


content

음악 혐오

책 ・ 2017

평균 3.7

“그뭔씹?”이라는 인터넷 용어를 아는가? “그게 뭔데 씹덕아?”의 줄임말로 상대방이 펼쳐내는 정보를 듣는이가 생전 처음 들어서 이해하지 못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오덕후다. 다만 서브컬처가 아닌 철학, 역사, 신화, 예술 등에서 말이다. ​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이름들과 철학들 그리고 로마어와 희랍어의 어원들. 한 페이지에 최소한 하나씩 있는 각주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뭔씹?” ​ 어렵다.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책이었다. 서점에서 분명 소설로 분류되지만 깊은 철학적 사색이 담긴 철학적 에세이에 더 가깝다. 앞서서 말한 것들도 그 원인이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이해하기 어려운 은유법과 중의법들의 사용도 큰 역할을 차지한다고 느꼈다. ​ 이 책은 음악 그 자체의 시원과 본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 음악의 근원은 죽음이다. 최초의 활은 동물의 사체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죽음으로써 만들어진 또 다른 죽음을 위한 도구. 그의 짝인 화살. 죽음을 통해 날아간 죽음은 바람을 가르며 또 다른 죽음을 만들어낸다. 슉! 휙! 탁! 이것은 음악이다. ​ 최초의 악기, 최초의 음악은 고통, 공포, 두려움, 죽음과 함께한다. 이것을 확장하면 음악은 타인 혹은 동물들의 복종을 위한 것이다. ​ 인간은 자신을 위협하고 복종시키는 무언가를 감각을 통해 지각하고 회피한다. 시각적 공포는 차단할 수 있다. 눈꺼풀로써, 커튼으로써 혹은 물리적 공간을 차단함으로써. 하지만 듣는 것은 보는 것과 다르다. 소리는 살갗이라는 것을 모르고,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 내에선 공간적 한계도 모른다. 회피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 그것은 소리이고 음악이다. ​ 책의 후반부로 향해 달릴수록 저자가 왜 ‘음악혐오’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된다. 유럽의 낭만주의 음악과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전쟁들. 음악의 복종이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들은 정신적으로 고문한 그 폭력성. 음악의 본성을 이기적으로 이용한 인간의 탐욕. 이 모든 것들이 그가 음악을 혐오하게 된 이유이다. ​ 하지만 필자는 저자의 생각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이라는 개념과 연결해보고 싶다. 무분별한 복종, 폭력 그리고 탐욕은 당연히 비판되어야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것들이 없인 살 수 없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상습자의 명령에 대해 복종해야할 부분은 당연히 존재하고 생존을 위해선 최소한의 폭력, 번영을 위해선 최소한의 탐욕도 필요로 한다. ​ 필자는 김윤아의 노래를 좋아한다. 짙은 우울의 어둠 속에서 핀 보라색 꽃 한 송이와 같은 그녀의 솔로 앨범을 들으면 그녀가 설계한 감정에 복종된다. 그리고 때론 메탈 음악을 듣기도 한다. 채찍이 말을 때려서 달리게 하듯이, 메탈이라는 채찍은 나를 때려 달리게 하고 정신 차리게 해준다. ​ 음악의 강요된, 제약이 없는 복종과 폭력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짧게는 3분, 길게는 1시간 정도 되는 음악의 복종과 폭력은 잠시 피곤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곤 한다 ​ 나는 이러한 측면에서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라는 책의 제목을 <음악 애증>으로 수정하고 싶다. ​ 애증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랑과 미움이라는 것이야 말로 음악을 표현하는 좋은 단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