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현 성

현 성

3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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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더 원더랜드

영화 ・ 2022

평균 3.9

자우림(紫雨林) : 자줏빛 비 내리는 숲 내가 이들의 노래를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였다. 사춘기를 보내며 나조차도 스스로가 버거울 때가 있었다. 우연히 자우림의 ‘팬이야’를 들으며 나를 힘들게 하는 너 역시 나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를 그리고 너를 안아주고 싶었다. 마치 여름철 한동안 피었다 지는 자줏빛 수국처럼 나의 사춘기 시절의 열병도 이겨낼 수 있었다. 나의 팬이 되어 하하하 웃으며 살다 보니 이전만큼 자우림의 노래를 찾지 않게 되었다. 가끔은 ‘일탈’을 귀가 터질 듯 크게 들으며 답답한 부모님의 품에서 얼른 벗어나고도 싶었지만 앓았던 열병에 비하면 무척이나 얕은, 귀여운 반항심이었다. 성인이 되어 그토록 바라던 서울로 독립을 하며 내 인생은 앞으로 행복으로 벅찰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 집의 치약은 금방 떨어졌고 퇴근길의 지하철은 숨이 막혔다. 세상은 가진 거라고는 젊음밖에 없는 나에게 각박했고 내 인생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다. 희망으로만 가득할 줄 알았던 내 미래는 당장 내일조차 희미했다. 나를 지켜주는 척 옥죄는 좁은 방에서 이어폰을 꽂고 한참을 누워있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지는 않았다. 깨어있어도 잠에 든 것만 못했기에. 검색창을 우울로 가득 채우며 알고리즘의 손을 잡고 더 짙은 우울로 잠식되었다. 천천히 꺼져가던 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우림이었다. ’이카루스‘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여름과 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줄 알았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소한 비밀 얘기 하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봐도 보이는 건, 보이는 건..’ ‘보이는 건, 보이는 건..’ 으로 1절이 끝남을 확인하며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았다. 방을 가득 채운 한숨을 다시 들이마셨다. 그때였다.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자,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 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 ‘ 분명 1절에는 없는 가사였는데. 도움닫기였던 걸까. 더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달려나가기 위한. 홀린 듯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암막 커튼위에 쌓여있는 무기력을 걷어내고 여전히 빛나고 있는 태양을 마주했다. 반가웠다. 나는 무엇이 그리도 무서웠던 걸까. 여전히 서툴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서툴던 스물하나의 나를 떠올려보곤 한다. 그 옆에는 너도 있다. 서툴던 것들이 아쉽고 후회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 같다. 아직 스물다섯이 채 되지 않았지만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이후에는 점점 멀어질수록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 같다. 이렇듯 내 인생이 담겨있는 자우림의 노래들이지만 그중에서도 낙관적 패배주의의 화자 자우림의 마음이 가장 잘 들리는 곡은 ‘샤이닝’이라고 생각한다.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우리의 가슴속에 늘 담겨있는 말들이다. 그만큼 여전히 젊은 세대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곡이다. 가수에게 새로운 팬의 유입은 당연히 좋은 것이다. 그러나 베이스 김진만은 슬프다 말한다. 발매 당시에도 젊은이들에게 많이 사랑받던 곡이라고. 그러나 세상이 점점 더 이 노래가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고. 맺힌 눈물에서 그들에게 음악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진심이 느껴졌다. 기쁠 때는 노래의 멜로디가 들리고 슬플 때는 노래의 가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되돌아보니 힘들 때 늘 자우림이 곁에 있었다. 몇 번이나 힘이 되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도 못했는데 영화에서 그들은 답한다. 앞으로도 당신이 힘들 때 늘 곁에 있겠다고, 힘이 되어주겠다고. 내 가슴에도 분명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행여 휩쓸릴까 두려워 모른척하고 있지만 이들과 함께라면 이제는 두렵지 않다. 어쩌면 평생 멎지 않는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