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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로 가는 여군
평균 3.8
<1883>이 떠오르는 여정. 비록 남편과 결혼이라는 이상적인 가치, 마치 물질적인 풍요가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묘사되는 캘리포니아라는 공간이 아메리카 드림의 상징처럼도 느껴지지만, 그 (신화적인) 여정을 한갓 생존의 장으로 만든다. 인디언이라는 위악적인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직접적인 습격 장면은 묘사하지 않은 채 덜어내는 것처럼, 되레 부각되는 건 자연의 재난이다. 언덕을 내려가는 것조차 목숨을 건 도전이고, 홍수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된다. 부서지고 망가지는 무수한 마차들처럼, 서부를 가로지르는 마차라는 그 낭만적이고 개척자적인 풍경을 부서트린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토록 광활하고 시원적인 공간에서의 어떤 신화적인 감각을 아예 내던지진 않는데, 출산의 순간이 그렇다. 망가진 마차를 수십여 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간신히 지탱하고, 그 안에서 생명이 탄생한다. 무한한 공간과 부서진 마차, 그리고 공동체적인 연대와 새로운 생명. 부서진 마차를 뒤로 한 채 여전히 달려 나가는 행렬을 보자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혹은 아무것도 없기에 오히려 더 샘솟는 의지와 활력이 포착되는 것만 같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제목에서부터 강조되는 여성들의 존재다. 여정의 시작 전부터 이름과 얼굴을 호명하는가 하면, 그녀들의 죽음에까지 예우를 갖추는 호명의 숏이 역시나 나타난다. 나이브하게 표현하자면, 서부의 공간에 여성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지고, 죽음과 애도의 태도가 서린다. 그러는 한편, 그녀들의 의지와 결기, 우정과 연대, 품위와 존경, 사랑과 유머 또한 놓치지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 개운치 않은 것은 일본인 캐릭터 ㅡ있을 리 없는 일본식 이름을 통한 희화적인 유머부터 조금 갸우뚱하긴 했지만ㅡ 이토의 엔딩이다. 영화는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커플에게 경의를 바치는 그의 모습을 엔딩으로 할애하지만, 오직 그의 곁에만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민자, 장애인, 과부, 미혼모 등 모두가 짝을 찾으며 공동체의 축복을 이룩하나, 이토는 여전히 공동체를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