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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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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onths ag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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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

영화 ・ 2025

서구세계의 약진의 발판이라고 여겨졌던 신항로개척 시기는 실은 정체의 연속이었다. 발전이란 몇몇 기득권만이 독점하였던 열매였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과정에서 부상당하였던 수많은 영혼들에게 있어 그 시기란 냉엄하게 중지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수 차례의 원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었던 마젤란도 이미 기동력을 잃어버린 몸이 된지 오래였으나,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제국주의라는 화마를 억제하기는 커녕 그 고삐를 움켜쥠으로써, 자신의 멈춰세워진 시간을 재가동시키고자 하였다. 허나 다른 이의 발목을 잘라내어 그 속도를 취하려 든다 한들, 약탈자에게 있어 시간의 진전은 주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전진을 위하여 먹혀버렸던 다른 이들의 시간의 총합이 더욱 무거웠기에, 마젤란이 그토록 바랬던 시간의 가속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시종일관 유지하여 파훼되지 않는 느린 페이스는, 당시 서구세계가 발전이라 칭하였던 항로의 실상에 대한 냉소적인 고발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마젤란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나아감을 위하여 다른 이의 시간을 지불하기로 선택하였던 엔리케에게조차도 자유의 빛은 내리쪼이지 않을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유민이 되지 못하였던 그는, 그저 섬기는 주인을 바꾸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