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양기연

양기연

7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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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영화 ・ 2018

평균 3.4

디지털로의 전환에서 다시 우리의 삶으로, 다시 영화로. (스포일러) . 번역제는 <논픽션>이라 되어 있지만 이 영화의 원제는 , 즉 ‘두 개의 삶’이다. 영화의 가장 주된 화두로 등장하는 출판업계의 이슈를 보자면, 책에게 있어서 크게 양장본, 페이퍼백 등 유형 출판물로서의 삶과 E-북으로 대표되는 무형 출판물로서의 삶, 두 가지의 삶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알랭은 무형의 디지털 출판물에는 출판물의 어떤 정수가 깃들 수 없고, 디지털로서의 전환이 곧 출판업계의 종언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알랭의 생각대로 출판물은 반드시 유형과 무형,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 하나의 삶을 택할 때 다른 하나의 삶은 양립 불가하며 반드시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사야스가 이 영화를 보여주고자 하는 코미디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 책에게 아날로그의 삶과 디지털의 삶, 두 가지 삶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갖가지 기준에 따라 그 삶의 양태가 분열될 수 있다. 일단 직업인으로서의 삶과 일상을 영위할 때의 삶으로 두 개의 삶(doubles vies)을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알랭은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직업인으로서는 디지털로의 전환을 우려하고 비판하며 그 일례로 토론을 온라인상에서만 진행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듯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의 일상에서는 아내 셀레나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때 자신의 태블릿PC를 보느라 그녀의 말에 충분히 관심을 쏟지 못하는 모순을 보인다. 더불어 그의 일상에 있어서도 그는 셀레나라는 아내와 마르탱이라는 아들을 둔 가장의 삶을 살면서도 몰래 로르와 불륜을 저지르는 이중의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이런 이중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을 그토록 자연스럽게 여기면서도 왜 그는 출판물의 삶에 있어서만은 아날로그의 방식만을 고집해야 하는가?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알랭의 신념은 퍽 우스워진다. 나아가 드우라는 사기꾼의 낚시질에 회장이 낚여 출판사 매각을 고민함으로써 알랭은 당장 자신의 직장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데, 이 앞에서 알랭의 출판업계 존망 우려는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한 것이다. . 그의 아내 셀레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6년간 남편을 속이며 베르나르와 불륜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이중의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나 그 간극을 바라보는 데 있어 자신의 남편보다 훨씬 능숙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디지털로서의 전환을 좀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알랭에 반해 그 변화를 쉬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알랭이 베르나르의 소설 속 여성을 끝까지 자신이 아닌 스테파니로 오해하는 반면 진작부터 알랭의 외도를 눈치 채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배우의 삶과 예술적인 성과를 거두는 배우의 삶에서 여전히 하나를 취사선택하고자 하는 모순에 직면해 있다. . 베르나르는 알랭과 정반대의 극단에 놓인 인물이다. 그의 소설은 실제 삶에서의 재료들을 차용하여 이를 가상의 인물들인 척 감추려 하는 동시에, 구글 검색으로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가 보지도 않은 세비야와 직접 감상하지도 않은 하네케의 <하얀 리본>을 마치 진짜 겪은 것처럼 묘사한다. 이처럼 픽션과 논픽션의 이중의 삶을 넘나들면서도 충분히 영리하지 못한 탓에, 그는 실제로 겪은 논픽션의 재료들을 픽션처럼 가져다 쓴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 인물들에 대해 무례한 것이 아니냐며 도덕적인 면에서 공격받는 한 편, 실제로 겪지 않고 자료 조사로 대충 짜깁기한 픽션을 논픽션처럼 가져다 쓴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로 <하얀 리본>을 본 것이 맞냐고 캐묻는 DJ의 질문처럼 그 신빙성에 대해 공격당한다. 셀레나가 끝까지 자신의 자신의 불륜을 남편에게 감출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아내 발레리에게 너무 쉽게 불륜을 들킨 것은 덤이다. . 한 편, 그의 아내 발레리는 정치인으로서의 삶과 게이이자 성매매를 일삼는 일반인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다비드를 위해서는 그의 치부를 감추어주는 선택을 하는 반면, 자신의 남편 레오나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모른 척 하고 싶지 않다며 그의 외도에 대해 캐묻는 서로 다른 이중적인 선택을 내린다. . 이 영화에서 아날로그에서의 디지털로의 전환 양상 및 이를 둘러싼 출판업계와 온라인 네트워크상의 변화를 가장 영민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은 로르일 것이다. 영화의 모든 숏이 일반적인 컷으로 연결되어 있는 반면, 로르가 등장하는 시점에만 단 두 번 페이드아웃으로 숏이 마무리되는 지점이 있다. 첫 번째 페이드아웃은 로르가 자신의 여자 애인과 마지막 섹스를 하고 관계를 마무리 지으려는 시점에 등장한다. 두 번째 페이드아웃은 로르가 자신의 남자 애인인 알랭과 관계를 마무리 짓고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는 시점에 등장한다. 그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출판업계가 배태한 이중의 삶을 영민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중의 삶이 필연적으로 좋지 않은 결말에 이를 것임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 극중의 모든 인물들이 여전히 어떤 모순점들을 간직하고 있는 와중에 로르만이 자신의 모든 인간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직장으로 떠나는 동시에 영영 프레임 밖으로 벗어남으로써 모든 모순으로부터 벗어난다. 영화 역시 이를 긍정하듯 로르가 모순을 한 겹 극복할 때마다 페이드아웃으로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어주고 그녀가 끝내 영화의 프레임으로부터도 온전히 해방될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보인다. . 로르는 영화의 프레임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주인공 격인 알랭에게 일종의 힌트를 던진다. 그리고 그 이후 알랭은 비로소 E-북으로 대표되는 변화의 양상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엔딩 시점에서 인물들은 일견 자신들의 모순점을 극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알랭은 여전히 셀레나의 불륜 사실도, 그리고 그 내용이 고스란히 베르나르의 소설 안에 녹아 있음을 알지 못한다. 셀레나는 베르나르가 자기 이야기를 새 소설로 쓰고 있음을 알지 못하며, 자신이 과거에 찍었던 TV 드라마의 가치를 부정하는 듯한 언행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베르나르와 발레리는 그들의 새 아이를 둘러싼 새로운 의문에 직면한다. 여전히 그들의 삶은 어떤 비밀들을 껴안고 이중의 삶으로 분화하고 있으며 그들은 평생 그 모순들을 껴안고 가야 할 것이다. . 페이스북, 트위터, 우버, E-북, 태블릿 PC, 스마트폰, 에스프레소 프레스 머신 등 디지털화된 생활양식이 이미 일상 전반에 퍼져 있다. 더군다나 출판되는 그 내용물부터 레오나르의 소설처럼 픽션과 논픽션이 첨예하게 뒤엉켜 있는 문학이거나 아니면 중간에 언급된 누군가의 글처럼 트위터 등지의 글타래를 다시 편집해서 낸 글이라면, 이미 그 포맷이 아날로그인지 디지털인지는 더 이상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만나 대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그토록 언급하면서도 알랭은 베르나르에게 그의 신간을 출간하지 않겠다는 뜻을 직접 대놓고 말하기 전까지는 전혀 전달하지 못했고, 자신의 아내를 그토록 가까이서 보면서도 그녀의 불륜에 대해서도 끝까지 알지 못했다. 또한 베르나르와 발레리 부부와 친구들의 대화에서 발레리는 오히려 타인이 직접 보이는 태도와 표정들로 인해 한층 더 상처를 받았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제로 만나서 나누는 대화가 반드시 디지털 상으로 이루어지는 온라인의 대화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아사야스는 아날로그의 삶이 디지털의 삶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과거의 아날로그적 삶만을 고집할 때 품을 수밖에 없는 어떤 모순들을 실제 삶의 모순들에 비추어 보이면서 그 모순들로부터 지루할 새 없이 코미디를 이끌어낸다. 엔딩에서조차도 그는 발레리의 임신처럼 끝까지 해소되지 않는 비밀들을 품고 가며 그 코미디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이 정도 지점에만 머물렀다면 아사야스의 이번 영화는 적잖이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 영화 중반부에 나오는 대사들에 따르면, 출판의 대세는 E-북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리더기를 통한 독서량은 외려 줄어들고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통한 독서량이 늘어나는 동시에 양장본의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영화가 거쳐 온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에 있어서도 극장에서의 영사 방식은 필름 영사에서 DCP 영사로 거진 대체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극장에서의 관람 양태를 대체하리라 여겼던 (아마도 리더기를 통한 E-북 독서에 대응될 만한) DVD, 블루레이 등의 물리매체는 오히려 어느새 그 열기가 시들해지고, 이제는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통한 독서에 대응될 만한)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한 편, 독서에 있어서 양장본 등의 프리미엄 출판본의 수요가 오히려 다시 늘어난 것처럼, 극장 상영에 있어서는 아이맥스, 돌비 애트모스, 돌비 비전 등의 프리미엄 상영 형식에 대한 수요가 새로이 창출되었다. 아사야스는 이 점에 착안하여, 디지털로 전환되어 가는 출판업계와 이중적 삶을 영위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면면을 영화라는 매체에 다시 비추어보는 연출 방식을 통해 한 발 더 나아간다. . 이 영화는 슈퍼 16mm로 촬영된 영화이다. 슈퍼 16mm는 애초부터 35mm 필름에 비해 조금 더 편리하고 저렴하게 촬영할 목적으로 나온 규격으로 상영할 때는 35mm로 블로우업되어 상영되곤 했다. 태생적으로 자신의 포맷을 온전히 유지한 채 상영될 수 없었던 포맷인 셈이다. 필름 영사방식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DCP 상영이 거의 정착되어 버린 요즈음 시점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결국 이 영화의 촬영 및 영사 방식부터가 아날로그로부터 디지털로의 전환 양상 및 아날로그가 과연 온전히 원 형태를 유지한 ‘정수’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한 데 품고 있는 셈이다. . 아사야스는 그 자체로 ‘이중의 삶’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슈퍼 16mm 필름으로, 거의 모든 숏들을 인물들의 대화로 채우고 있다(가끔 롱숏으로 풍경을 담는 숏들조차도 인물이 그 자리에 이미 위치해 있거나 아니면 곧 그 장소에 도달할 것을 미리 인지한 채 대기하고 있는 숏들로만 채워져 있다.). 인물들이 일단 대화를 시작하면 그때부터의 거의 모든 숏들은 현재 발화하고 있는 이를 따라가며, 말하는 이의 숏 뒤에는 이에 대답하는 이의 역숏이 뒤따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종 대화가 숏이 넘어가는 순간에 맞물리는 순간들은 있을지언정, 프레임 밖의 인물이 떠드는 동안 프레임 내의 인물이 마냥 듣고만 있는 방식의 숏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바스트 숏이든 풀 숏이든 대화가 이어지는 중의 거의 모든 숏은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 한 명만을 프레임 중심에 둘 뿐, 입을 열지 않는 인물들은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거나 옆모습이나 뒷모습으로 프레임 구석에 밀려나 있다. . 아사야스는 전작 <퍼스널 쇼퍼>에서 문자 메시지를 담은 휴대폰 프레임을 영화의 프레임으로 치환한 바 있다.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논픽션>의 대화 장면에서의 매 숏이 그 자체로 하나의 트윗 혹은 하나의 스레드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나의 숏은 당장 말하고 있는 하나의 인물에 할당되고, 그 숏은 그 사람의 언사가 중지되는 즈음에 멈춘다. 그 사람의 트윗이 끝난 셈이다. 이때 영화의 프레임은 곧 그 사람의 트윗을 담는 프레임과 동일시된다. 나아가 다른 인물이 자신의 생각을 이어붙이면 마치 리플라이 혹은 멘션처럼 현재 말하고 있는 그를 프레임 중심에 놓은 새로운 숏이 이어지는 것이다. . 인물들은 대화를 하는 동안 담배를 피우러 베란다로 나갔다가 춥다며 다시 들어오는가 하면, 방안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계속 다른 곳에 앉거나,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니기도 하고, 아예 장소를 이동하기도 한다. 이때도 카메라는 일단 대화가 시작하고 그 대화가 이어지는 중이라면 컷 하나로 그때그때 계속 대화하는 인물을 따라붙어 숏들을 이어붙일 뿐 굳이 다른 인서트 숏을 끼워 넣지 않는다. 장소를 계속 이동하는데도 대화의 멈춤이 없이 글타래가 이어붙는 이러한 연출 방식도 SNS의 특성과 통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여러 사람이 직접 모여서 대화를 나누던 양상은 이제 서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타이핑하여 트위터 등 SNS에 디지털화하여 게시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소통하게 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아사야스는 이러한 토론의 변화 양상을 여러 사람이 직접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오프라인에서의 실제 대화)을 슈퍼 16mm 필름에 붙박아(자신의 생각을 타이핑) 35mm로 블로우업되거나 DCP로 변환되어 영사(SNS에 디지털화된 형태로 게시)되는 일련의 과정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사야스는 영화 내내 여러 번 배우들의 목소리로 녹음된 오디오북을 듣는 행위가 실제 책을 읽는 행위를 대체하고 있음을 강조하는데, 트윗의 연쇄를 굳이 배우들이 입으로 대사를 읊는 행위로 대체한 이유도 여기서 유추해 볼 수 있다(영화의 말미에는 이 영화에 출연한 줄리엣 비노쉬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 . 아사야스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 사람들의 이중적 삶을 연결하여 흥미로운 코미디를 전개함과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퍼스널 쇼퍼>에 이어 새로운 연출적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비록 그 연출이 <퍼스널 쇼퍼>만큼 파격적이거나 소재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야스가 다음 편에 또 어떤 연출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를 감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