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
3 years ago

벌집의 정령
평균 3.9
무력하고 무참한 세상에 아이를 내세우는 영화를 볼 때면 애틋하면서도 가슴이 너무 시리다. 티 없는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견뎌내거나. 어느 쪽이 되었건 어른들의 판타지인 것만 같아서. <벌집의 정령>도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혼자 엉뚱스레 고민스럽지만, 숨막히게 아름답고 섬뜩한 이미지로 둘러싸인 영화를 보고 있자면 아무렴 매혹된다. 이미지를 초과하는 불안과 긴장. 프랑켄슈타인, 외딴 건물, 우물, 발자국, 독버섯, 벌집, 기차, 마치 모닥불을 뛰어넘는 아이들의 놀이처럼 천진하면서 위험천만한 것들. 모호한 이야기를 감싼 은유들조차 분명 풍요로운 것일 테지만, 낯선 남자의 등장만으로 공기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처럼 이미지가 호흡을 앗아가고 느슨한 리듬으로 이미 압도한다. (마치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들처럼)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우린 무력하다는 진실과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죽음을 음미하는, 이렇게나 아름답고 무력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