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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태어날 때 하늘의 존재야. 태어나서도 그렇고 죽어서도 그래. 우린 원래 하늘에 속해. 그래서 하늘을 느껴. 단순해. 우리가 하늘이기 때문에 하늘을 느끼는 거야. 그게 시야. 그걸 못 느끼면 살아서도 사실은 죽은 놈이야. 사람으로 태어나면 또 사람 짓을 해야 돼. 배워야 돼. 하늘의 존재인데 사람 짓도 배워야 돼. 안 그러면 죽어. 남들이 널 죽여버려.” <강변호텔>(2018)에서 영환(기주봉)이 두 아들 경수(권해효)와 병수(유준상)를 불러놓고 한 말이다. 남들의 질타를 받았던 대상은 <수유천>에 이르러 <강변호텔> 속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물림된 것 같다. <수유천>의 추시언(권해효)은 과거 잘 나가는 배우이자 감독이었으나 사람들의 질타를 받고 현재는 강원도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한가로이 지내고 있다. 모 여대에서 강사로 있는 전임(김민희)의 엄마이자 시언 자신의 여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아 삼촌과 조카는 오래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다시 그것이 전임에게 넘어갈 차례인지 텍스타일을 전공한 그녀는 한강, 중랑천, 수유천,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물의 흐름을 작품으로 남기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전임은 그것 그대로의 상태를 거슬러 올라가 보려 하는 것 같다. 대학에서 전임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교수 정은열(조윤희)에게 “학생들을 정말 사랑하시고, 저에게도 정말 잘해주세요. 마치 학과의 어머니 같은 존재예요.”라는 말들을 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전임이 시언과 처음 은열의 연구실에 방문해 대화를 하다가 전임이 잠시 자신의 책상으로 자리를 떴을 때 전임의 무표정 같은 것들 역시 그러한 일련의 행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종의 사건 이후 총장에게 불려 가며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 같자 본심을 숨기지 않는다. 강원도까지 운전을 부탁하는 것에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술을 마셔버림으로써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하루 일과처럼 보이던 수유천을 스케치하는 모습도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시언과 은열, 그리고 관객 앞에서 담배를 피우겠노라 말한다. 전임이 하늘로 태어난 존재인지는 모르고, 하늘의 존재인데 사람 짓도 배우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모두는 각자 저마다 정도는 다르겠으나 부단히 노력해오고 있다. 전임은 그 부담을 털어내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한강, 중랑천, 수유천의 수원이 되는 곳을 보고 나오며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라 말하면서 정말 마알갛게 웃는데, 홍상수는 그것을 프리즈프레임에 담는다. 앞서 전임이 총장에게 불려 가던 중 낙엽을 들고 춤을 추는 장면 이후 틸트 업해 반짝이는 나무를 그리고 그 너머의 햇빛을 찍을 때, 그리고 반복해서 틸트 업해 하늘의 달을 찍을 때, <도망친 여자>(2019)에선 갑자기 옆에 나타난 길고양이를 담을 때의 느낌이 났다. 타인의 시선이나 의도는 배제한 채,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있을 때의 모습이었기에 전임의 마지막을 자연물을 담을 때처럼 촬영하지 않았을까. 전임은 내일부터 다시 텍스타일 작업을 할 수도, 여느 대학의 전임교수가 됐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가능성도 활짝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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