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환

에딩턴
평균 3.5
고결하다고 믿는 선행조차 스스로 업로드하는, 자기 PR시대의 (자칭) 영웅들이 총 대신 카메라를 든 현대의 서부극. 알고리즘과 신념 속에서 각자의 사명감에 취한 이들의 최초의 정의로움은 어디로 갔을까. 서부극 자체가, 변절된 이념과,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는 남자들의 폭력으로 점철된 장르가 아니었나. 에딩턴은 가장 미국적인 사회를 한 마을로 압축해 보여주지만, 핸드폰을 삶과 분리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오늘날 모두에게 해당되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2020년, 코로나가 초래했던 극도의 단절감보다, SNS와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대립에서 비롯된 2025년 오늘날의 분열감이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영화다. 입(소통)을 가린 마스크가 단절을 상징한다지만, 우리를 먼저 각자의 세계로 고립시킨 것은 우리를 연결시키겠다는 태초의 약속이 변절된 미디어라는 점을 일깨운다. 터무니 없는 음모론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모순에 빠진 위선적인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편이 곧 정의이자 선이며 내가 감히 틀렸을 가능성조차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풍경은 이미 현실 속 우리들에게도 익숙하다. 사람들의 이성(논리)이 언제부터 무너졌는지 가늠도 못할 지경이지만, 영화는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해답이나 입장을 제시하는 대신에, 불안과 분열과 불신만을 뒤섞어 무책임한 도발처럼 던져놓는다. 입장을 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약간의 두려움에 따른 한 발짝 물러섬, 일종의 보험처럼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겁쟁이의 태도라기에는 영화가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나열하는 이 시대의 문제점들은 그 어떤 사회풍자 영화만큼이나 대담하다. 따라서, 의도적인 회피라기보다는, 누구보다 적나라한 상황 직시를 통해 그저 단순한 설정이 아닌 사회적으로 뜨거웠던 테마 자체를 다루겠다는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미결의 혼돈을 보며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겠다는 취지보다는, 최근까지 분열된 세상을 냉소적으로(한심하게) 바라봤던 개인의 입장을 더 와닿게 만든다.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한다지만, 조용한 침묵의 영웅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고결하다고 믿는 선행조차 스스로 업로드하는, 우스꽝스러운, 바야흐로 자기 PR의 시대다. SNS로 홍보하고, 지지받으며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의 세상은 몇 인치의 모니터 속에서 강화된다. 폭로하고, 주장하고, 포착하고 조작하는 세계. 영화는 시종일관 그 작은 모니터 속 세계들과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을 비춘다. 상식적이고 이타적이었던 개인의 목소리가 정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본래의 목적을 상실해 가듯, 영화도 어느 기점으로 대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아리 애스터 영화들 가운데 가장 직관적이고, 평면적이며, (무엇보다) 가장 재밌는 이번 작에서도 여전히 더 거대한 시스템(힘)에 의해 휘둘리는 개인을 집착하듯 주장한다. 폭력과 조작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진실은 왜곡되고, 고여버린 알고리즘과 음모론에 잠식되어 무엇이 진실인지 가릴 힘을 잃는 것. 정치와 미디어가 개인의 목소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고, 저마다의 이상향을 품고서 시행된 야심찬 투쟁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결국 시스템이 원하는 이미지와 표상만이 허망하게 남아있는 풍경들이 그러하다. 서부극을 끌어온 순간부터 어느정도 예견되어 있을 폭력은, 200년 전부터 시작된 단순한 폭력의 역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왔음을 진작부터 내포했을 뿐이다. 현대의 서부극에서의 쇼다운은 총 대신 카메라를 꺼내들었지만, 그렇다고 사격 연습을 소홀히하는 시대는 아니다. 갈등의 끝에는 폭력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니까. 에딩턴은 박물관에 떨어져 총기 상점으로 가는 영화다. 우발적 충동과 계산된 전략들이 뒤엉킨 정치적 흐름의 위험성이 예측할 수없는 영화의 리듬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를 다 보았다면, 이제 영화가 아닌 현실을 이야기해보자. 누가 이 세상을 그렇게 몰아갔을까. 다름아닌 우리가 직접 선택한 알고리즘과 세상이다. 우리가 원한 건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지만, 그 점에서는 당신들이 그토록 증오하던 반대편 진영의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다. 세상의 종말을 경고하며 외치는 모습이 마치, 누구보다도 종말을 바라는 듯 느껴지기도 하는 SNS 속 디스토피아적 분열은 한심하지만 동시에 씁쓸하다. 하지만, 그 분열이 기어이 현실로 뛰쳐나와 폭력성을 띄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알고리즘과 신념 속에서 각자의 사명감에 취한 자칭 영웅들의 최초의 정의로움은 어디로 갔을까. 서부극 자체가, 변절된 이념과, 스스로 정의롭다고 믿는 남자들의 폭력으로 점철된 장르가 아니었던가. 사회를 비판하자는 차가운 진정성도, 다 함께 분노하자는 뜨거움도 없이, 혼란스러운 심리에 집중하는 이 영화는 일부 엉성함마저도 의도된 발가벗겨짐처럼 보인다. 특정한 시대를 포착했지만, 지금보다 심하면 더 심했을 멍청하고도 단순한 분열은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에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간혹 ‘우연은 없다’는 전제를 지나치게 맹신한 나머지, 출처 불분명한 논리를 들이대며 갖가지 의혹들을 억지로 귀납하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그 논리의 비약에 있을 뿐이지, 통제 불가능한 분열된 시대의 고통은 비단 우연 뿐만은 아니라는 점은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