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정환

정환

6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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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아일

영화 ・ 2018

평균 3.8

“처음이라 어색했던 순간을 지나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들을 간과하지만 않는다면, 고독마저 익숙해져 버린 이 삶에서 그간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삶을 배우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어색해하지 않을 순간, 나의 비워버린 모든 것들을 채워줄 바다가 들려온다.” 늘 반복되는 듯 보여도, 누구보다 넓은 곳에 외로워 보여도, 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이 모든 것들을 파도 소리 하나만으로도 채우는 그곳. 바다가 쓸쓸함을 지닌 모든 공간들이 꿈꾸는 곳이라면(마트 안 휴게소에서 걸려있는 바다의 사진도) 음악이 가장 동경하는 소리는 파도 소리일지도 모른다. 좀처럼 비어 보이지 않는 이유가 파도 소리 덕분일까. 저기 저 끝을 모를 넓은 바다가 주는 파도의 소리는 절대로 울리지 않는다. 반면, 나 홀로 떨어진 이 세상에 그 어떤 음악을 들어도 내 곁에는 이렇게나 빈자리가 많기에 소리는 힘없이 퍼져 울릴 뿐, 결코 공간을 채우지 못한다. 비어버린 것들을 감히 채워보고자 했던 음악의 힘찬 유영도 끝내는 그저 빈 공감의 공허함만 잔뜩 부각시킬 뿐이다. 나 홀로 떨어진 이 세상은 너무나도 넓기에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좁은 통로로 향한다. 모든 외로운 존재들의 집합소. 통로는 말 그대로 지나가기 위한 길이다. 길의 목적지가 다를 뿐, 통로는 우리가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다. 비록 외로운 사람들만이 오가는 길이라 하여도 수많은 0들이 모인 이곳이 가장 서로를 잘 채울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빈 공간이던, 공간과 사람 사이의 공간이던. 그 통로 사이에서 우리는 삶을 배운다. 배워야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지 않는다면 잘 할 수가 없다. 지게차를 배우는 법과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는 법도 마찬가지로. 만일 배움에 있어서 반복이 가장 중요하다면, 삶을 배우는 우리에게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들을 그저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우리는 어떤 고독과 함께 살고 있을까. 지금 이 공간의 비어버린 곳들은 과연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삶을 배우기 위해서는 나를 잠식한 이 우울과 공허함을 무작정 채우려 하기보다는 여러 번 반복되는 과정 속에 동화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더 잘 하기 위해서, 더 잘 알기 위해서. 처음이라 어색해진 순간과 반복으로 권태를 맞이하다 보면, 익숙해진 것에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수천 번을 들었던 지게차 소리가 실은 파도 소리였던 것처럼. 빈 공간을 힘없이 울리는 음악들과 정적인 순간들을 유영하는 어색한 공기들은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않는다. 잠시 쉬어가는 길일 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길일 수도 있는 이 통로가 내게 준 것은 수많은 외로운 존재들이 오고 가며 남긴 사람의 흔적들이다. 그렇게 삶을 배우고, 아무 말 하지 않고도 어색해하지 않는 순간에 어느덧 바다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