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GS

GS

7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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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영화 ・ 2016

평균 3.6

삶과 영화는 어떻게 관계 맺는가. (※ 스포 주의) -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이하 <미스터 모>)에서 불현듯 위암을 선고받은 모금산(기주봉)은 갑자기 자신의 아들 스데반(오정환)과 그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과 함께 무성 영화를 제작한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를 완성하고, 모금산의 지인을 대상으로 소박한 상영회를 연다. 그런데 정작 상영회의 주인공 모금산은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는 병실 침대에 앉아 강냉이를 먹으며 무심결에 촬영 소품인 기폭 장치 버튼을 누른다. 버튼을 눌러서일까. 곧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꽃놀이가 하늘을 영롱하게 뒤덮는다. -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불꽃놀이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비록 불꽃은 무채색임에도 광휘를 잃지 않는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미소를 내보이지 않은 모금산의 얼굴은 유리창 너머의 불꽃과 교감하며 포근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영화 전체의 인상을 뒤바꿀 정도로 강렬한 이 장면이 유독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불꽃놀이가 찬란하고 아름답다는 수사로 치장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여운은 영화와 현실이 관계 맺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에서 불발된 폭탄이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로 변할 때 전해지는 감동은 지난한 노정을 모두 지켜본 관객의 입장에서 이루 말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영화와 삶이 연결되는 빛나는 순간이 있다. <미스터 모>는 그 빛나는 순간을 섬세히 지켜보다 포착하는 영화다. - 우리는 당연히 영화와 현실이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또 영화가 현실에 물리적인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영화가 현실을 포착하여 복제할 수 있을지언정, 진실마저 담아낼 수는 없다. 상영회에서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를 보는 관객의 표정과 예원의 표정이 사뭇 다른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제작하며 모금산의 투병 소식을 알게 된 예원은 익살스러운 그의 연기를 보아도 웃을 수 없다. 그 대신에 영화가 현실의 비극을 치유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만 새삼 인지할 뿐이다. 이처럼 예원도 영화를 보며 현실을 포개어 볼 수밖에 없듯이, 모든 상황을 목격한 우리 또한 현실의 층위를 배제할 수 없다. <미스터 모>는 그러한 영화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현실의 층위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영화와 현실이 우연히 만나는 귀중한 순간을 보듬는다. - 돌이켜 보면 <미스터 모>는 영화 제작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영화를 통해 삶과 실존을 되묻는 회고적 여정에 집중한다. 영화 자체가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주변의 파장과 윤곽을 다듬는 셈이다. 갈등을 전개하는 중심 소재인 질병과 출생의 비밀, 부자/연인 관계의 충돌은 과거를 돌아보는 길목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상흔이다. 편집 도중에 돌연히 눈물을 흘리는 스데반은 회고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양한 순간이다.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의 감흥은 사실 스토리와 메시지, 장르적 쾌감 따위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모금산의 존재에서 우선한다. 애틋하고 따스한 정서는 모금산의 현실과 영화를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간극에서 발생한다. (불발된 폭탄을 확인하고 "해피 뉴 이어!"라고 외치는 영화 속 모금산과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현실의 모금산은 다르면서도 같다.) - 따라서 불꽃놀이의 여운은 모금산의 삶과 영화가 기적적으로 교차하며 발생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힘을 행사할 수 없는 영화가 현실을 투영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나아가 영화적 순간이 현실과 맞닿으며 삶을 위로하는 방식일 것이다. "잘자영."이라는 그 흔한 말이 자영(전여빈) 앞에서는 영원한 생명력을 얻고, 아들과 부인의 옛 모습을 담은 (누군가에게는) 고리타분한 영상이 모금산에게는 강냉이조차 넘기기 어려운 슬픔이 된다. 이렇게 삶에 틈입하는 영화적 순간은 우연의 형상을 띠며 홀연히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의 불꽃놀이가 소위 말하는 '해피 엔딩'을 담보하지 않아도 좋다. 건강의 회복이나 삶의 개선 따위를 예정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이미 영화가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다만, 우연처럼 찾아온 그 불꽃놀이가 설령 희망을 예언하지 않더라도, 미약하게나마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삶의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확정적 결론은 작위성을 내재하고 있기에, 때론 불안하지만 무수한 가능성이 더욱 믿음을 안겨주는 법이다. 마지막 쇼트의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은 모금산의 미소를 최대한 지연하려는 태도로 영화가 현실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가 아닐까. 우유부단하다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을 보듬어 다시 삶을 길어 올리는 <미스터 모>는 늘 우리 주위를 배회하는 사랑스러운 친구 같다. - - https://blog.naver.com/rmatjdwjdals/221624247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