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신상훈남

신상훈남

8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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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영화 ・ 2011

평균 3.6

2018년 04월 15일에 봄

"원래 이유가 없는 거야. 근데 그냥 우리가 억지로 이유를 갖다 붙이는 거지. 그냥 이 조화로운 움직임들을 느끼면서 살면 돼. 그게 착하게 사는 거야." 1. 웬만해선 꼼짝 않는 카메라, 대사만 듣고 있어도 재미진 묘한 광경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는 많은 것들. 홍상수 감독은 그것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지만 이내 멈췄던 그 생각을 섬세하게 다뤄냄으로써 다시금이 일깨워주는 작품. 또 이것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속 깊이 내재되어 있던 공감대를 묵직하게 자극시킨다. 요즘 영화 스타일과는 사뭇 다르다. 배우들의 표정보단 전체적인 모습을 담기 급급하고 무슨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지 파악조차 안 되는 흑백 필터를 끼워넣었다. 그런데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는 빨강과 연한 파랑의 대비를 이용해 색감적인 여유 또한 선사했다. 딱히 흥미를 유발하는 장면이 없는데도 다수의 사람들이 홍상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만의 리얼리티, 그리고 환상적인 대사. 2.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극강의 리얼리티 우선 촬영이 진행된 장소는 북촌이다. 북촌을 자주 가보진 않았지만 북촌이 풍기고 있는 분위기는 어딘가 평화롭고 그 분위기에 맞춰 내리고 있는 눈들을 보며 매우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를 피해 홀로 도망쳐온 골목길이 혹시 저토록 고요하진 않았나. 숨겨진 열망을 다시금 꺼내주는 친절한 장소 선정. 나는 특히나 공감했다. 대사 또한 확실하지가 않다. 원래 우리들이 대화할 때가 대부분 그렇다.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겠고,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다 한들 상대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 그냥 말할 때의 표정이나 느낌으로 알아 먹는 것이다. 대사가 완벽한 문장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없다. 대사가 어떻게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냐가 관건인데, 이 영화의 대사들은 하나같이 툭 내뱉듯, 진지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의 명장면 🎥] 1. 오해 사람들을 만나면 감정 소모를 하기 바쁘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감정은 그에 맞춰 소모된다. 성준(유준상)은 중원(김의성)과의 약속을 무시한 채 이기적인 자세를 보이며 다른 사람과 영화를 한다. 중원은 그 서운함을 토로하다가도, 성준 역시 오리발을 내밀다가도 건배 한 번에 마음 속에 차있던 분노가 조금은 수그러든다. 나도 영화를 만들 사람으로서, 술자리를 가져본 사람으로서 이 장면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 2. 이유 "이유가 없죠. 하하하. 그게 그렇게 이유 없이 일어난 일들이 모여서 우리 삶을 이루는 건데, 그 중에 우리가 일부러 몇 개만 취해서 선택해서, 그걸 이유라고 이렇게 생각의 라인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냥 몇 개의 점들로 이렇게 이루어져서 그걸 그냥 이유라고 하는 건데." 우연이 계속된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밥 먹듯 찾아오는 우연이 필연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걸까? 사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느껴서 본 것도 아니고, 단지 제일 먼저 보인 영화가 이것이라서 한 번 봐본 건데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는 내 상황은 과연 우연일까 필연일까? 애시당초 정답이 없는 이 고민의 굴레의 끝은 결국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려는 내 의지다. 우연이 필연으로, 혹은 필연이 우연으로. 내가 서있음에도 곧 휘청거린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휘청거리고 있으며 나는 이를 '방황'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날 때의 여러 감정들 역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