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JUN

JUN

3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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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죠의 기묘한 모험 스톤 오션

시리즈 ・ 2021

평균 4.1

인력, 혹은 중력은 우리를 한 지점으로 끌어당긴다. 우주의 중력이 지구라는 한 지점으로 모든 생명체들을 끌어당겼고, 우리는 이 중력 안에서 살고 있다. 멀어지고 팽창해가는 우주, 빛의 속도로 가도 닿을 수 없는 항성과 항성간의 거리 속에서 중력은 마법과 같은 힘이다. 무한한 공간인 우주 속에서 우리를 만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력에 의해 지구에 살고, 중력 속에서 만남을 이어간다. 우주의 중력이 45억년의 지구를 완성시켰고, 인간의 만남이란 45억년의 긴 시간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 선물과도 같다. 불교에선 모든 우연과 인연엔 이유가 있고, 각각의 인연마다 큰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하늘에 나뭇잎을 떨어뜨려 땅에 있는 어느 바늘에 꽂히게 할 확률, 인연이란 그 희박한 확률로 이루어진다. 죠스타 가문이 디오브란도라는 숙적을 만나 한 세기가 넘게 사투를 이어온 것도, 죠린이 그린돌핀 스트리트 형무소에 갇히게 된 것도, 푸치신부가 디오브란도를 만나게 된 것엔 모두 인력이 작용했다. 친언니를 잃고 형무소로 들어온 에르메스, 전연인을 살해한 안나수이, 푸치 신부로 부터 모든 것을 빼앗긴 웨더리포트, 플랑크톤에서 인간성을 되찾게 된 푸파이터즈 그리고 자신의 출생원인 조차 잘 알지 못하는 엠폴리오까지 각자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 인력에 의해 그린 돌핀 스트리트라는 한 지점으로 모여든다. 어쩌면 가장 추악하고 더럽다고 할 수 있는 교도소라는 한 지점에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을 지닌 이들의 이야기가 섞이고, 그들 각자 모두의 목표를 위해 달려나간다.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곳에서도 빛은 깃들고, 인연은 존재한다. 인간은 운명의 노예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서부터 존재해온 디오브란도와의 악연으로 인해, 감옥에 갇힌 죠린 처럼,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이는 아라키 히로히코의 전작 황금의 바람이 전하고자 한 주제였다. 많은 신화 속에 인물들이 이 운명에 저항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장님이된 오이디 푸스, 한여자를 사랑해 결국 전쟁에서 사망한 아킬레우스와 같이, 한때 호기롭던 인물들 마저 운명에 순응하게 된다. 푸치는 이 운명을 미리 알고 이것에 대해 각오하고 사는 것이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천국이라 말한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인간의 삶또한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많은 신학자, 혹은 철학자들이 했던 말이다. 운명을 향한 각오, 각오가 되어 있는 삶은 분명 없는 삶보단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이 모두 각오를 지니고 살 순 없다. 각오를 하는 것 역시 인간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푸치가 웨더리포트의 근친 행위를 막고자, 이를 사립 탐정에게 알린 것도 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 것이고, 죠린이 그의 아버지 쿠죠 죠타로를 살린 것도 그녀의 선택에 의해 된 것이다. 운명은 정해져 있으나, 그곳에서 어떤 각오를 할 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푸치를 죽일지, 아버지를 살릴지를 고민해야 했던 죠린은 결국 자신의 혈육인 아버지를 살리게 된다. 죠린이 아버지를 살리고, 그녀의 아버지인 쿠죠 죠타로가 자신의 딸을 살린다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선택에의해 결정되었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푸치는 자신의 운명을 100%알고 있다 장담하고 그 각오를 지니고, 엠폴리오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에게 작용한 웨더리포트와의 인력에 의해 살해당한다. 결국 그 역시 운명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운명과 인력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죽을 때 까지 내 운명을 알지 못할 수 도 있다. 운명을 향한 각오를 지닌다고 해도,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 더럽고 추악한 상황 속에서도 선한 인력은 존재한다. 푸치 신부의 악행을 맞겠다는 웨더 리포트의 각오는 죠린에게 이어지고 죠린의 각오는 곧바로 엠폴리오에게 우연처럼 이어진다. 점과 점이 연결되어 하나의 선이 되듯, 인간이 지닌 고귀한 의지는 인력에 실려 전해지게 되기 마련이다.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이문세의 노래처럼 운명은 그 누구도 모른다. 운명을 알고 그것에 대한 각오를 하는 삶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니체가 말한 초인이란 운명을 알고 각오하는 사자와 같은 삶이 아닌 운명을 모르더라도, 그것에, 맞서고 고귀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삶이다. 2022년을 끝마치며 10년간 이어져온 죠죠 시리즈의 마지막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2023년 어떤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죠스타 가문의 이야기가 10년간 나에게 전해준 이야기는 운명에 지지 않을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삶이었다. 체페리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았고 그것이 두려움에도 나아갔고, 카쿄인, 압둘 ,이기 역시 절대악에 대항해 죽음으로 그 의지를 지켜나갔다. 마약유통을 막겠다는 부챠라티의 숭고한 의지는 죠르노에게 그대로 전해져 이탈리아 전역에 선한 영향을 불러오게 된다. 나에게 그런 숭고한 의지가 있다면,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의 삶에 대한 찬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