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chan

chan

7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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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추적

영화 ・ 1981

평균 3.8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마련된 조작들의 집합으로서의 영화에 대하여- . (스포일러) 사건의 한 복판에서 시작하는 듯 보였던 영화의 오프닝이 실은 극중극의 한 형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공개됨과 동시에 영화 <필사의 추적>은 관객에게 앞으로 본 영화는 메타적 모티브를 다분히 동반한 채 진행될 것이라고 몸소 선언한다. <필사의 추적>의 오프닝은 그 자체로 긴장감 넘치고 흥미롭다는 점에서 극의 시작부에 배치되기에 더 없이 적합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매체의 필연적 성질을 다루는 본 영화의 주제를 전반적으로 간략히 요약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마치 영화 속 인물이 살해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극중극의 숏에서 본 극의 숏으로 시점이 이동하게 되면 우리는 당연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란 어디까지나 허구의 매체임을.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잭은 보란 듯이 그 허구성을 비웃으며 등장한다. 후에 음향감독인 주인공 잭이 살해당하는 영화 속 인물의 목소리를 보다 더 잘 어울리도록 인위적으로 변조하고 조작하는 모습이 공개되면 오프닝이 강조하는 영화 매체의 허구성은 보다 더 짙어진다.  . 한 개인이 부패로 가득찬 정치공작의 내막을 파헤친다는 영화의 메인플롯은 영화매체의 성질을 다루는 메타적 모티브와 항시 동행된다. 영화가 시각의 분야인 촬영과 편집, 그리고 청각의 분야인 음향효과를 재조합한 시청각적 결과물임을 감안하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직업이 사진기사와 음향감독이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에게 <필사의 추적은> 두 영화간의 대립, 더 정확히는 조작의 영화와 진실의 영화간의 대결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시청각적으로 왜곡된 요소들이 가득한 사건의 영상이 첫 번째 영화라고 가정한다면, 잭이 본인이 수집한 자료를 기반으로 사건의 내막을 재구성한 영상이 두 번째 영화로 자리할 것이다. 잭이 시청각적 자료들을 재조합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길고도 지난한 과정을 의도적으로 오랫동안 전시하는 영화의 시퀀스들은 이러한 과정이 필름메이킹의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명시한다.  . 이처럼 <필사의 추적>은 어떠한 각도에서 보더라도 흔히들 말하는 영화에 관한 영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소 상투적인 표현인걸 알지만 이 영화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말은 아마도 없으리라. 극의 중반부 정도 되는 지점에서, 잭의 적대세력은 여성 연쇄살인극으로 사건을 은폐하며 여론의 몰이를 유도한다. 여기서 잠시 영화의 프롤로그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본 영화의 범인은 마치 영화 속 영화, 즉 프롤로그의 극중극에서 튀어나온 하나의 초텍스트적 인격체처럼 보여진다. 영화가 프롤로그에서 살인사건의 현장을 보여주며 포문을 열었던 건 과연 우연이었을까? 앞서 영화의 시작부에 등장한 극중극의 연쇄살인 모티브가 마침내 본 극에서의 연쇄살인범 플롯으로 확장되는 순간, 매체의 성질을 다루는 영화의 주제는 장르와 완전히 도킹한다. 기술적으로 깔끔히 세공된 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만끽하는 와중에도 장르와 적절히 배합된 메타적 모티브의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마도 <필사의 추적>이 거둔 최고의 성과일 것이다. 그 연장에서 극의 클라이맥스는 이 양자 간의 흥미로운 배합의 극을 달한다. 잭이 죽은 셀리를 끌어 앉고 울부짖는 장면에서, 영화는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조금은 이질적인 연출읕 덧댄다. 분명 죽은 여주인공을 끌어 앉고 통곡하는 남자주인공의 모습은 지독히도 비극적이어야만 한다. 허나 영화 속의 해당 장면은 비극적인 동시에 아름답다. 나에겐 아름답다는 인상이 더 강했다. 그건 아마도 해당 장면에 시청각적인 조작이 인위적으로 덧씌워졌기 때문이리라. 그토록 비극적인 대목에 우연처럼 등장하는 불꽃놀이, 그토록 참혹한 대목에 등장하며 몸소 씬의 비극을 강조하는 영화의 ost. 시종 영화매체의 허구성을 강조해 오던 영화가 그전까지와는 다소 이질적인 시각효과와 음향효과를 덧댐으로서 몸소 그 허구성을 실현해 보이며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대목이다.  . 그리고 이어서 잊을 수 없는 앤딩이 등장한다. 잭의 입장에서 가장 끔찍하게 다가오는 그의 사적 경험이 그의 직업에 있어 최고의 도움을 주게 된다는 슬픈 아이러니는 둘째 치고, 더 집중해 볼 것은 그 이면이다. 바로 현실과 영화 사이의 관계말이다. (영화의 기준에서)실재하는 세상 속의 인물인 셀리의 비명 사운드가 잭이 작업하는 영화에 사용되어서야 비로소 모두가 만족할만한 씬이 완성됐다는 것은 영화가 시작부에 제시한 매체의 정의에 대한 수정을 야기한다. 앞서 영화가 오프닝에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하여 자고로 영화란 어디까지나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라고 정의 내렸다면 영화의 앤딩은 이러한 오프닝의 정의를 어디까지나 허구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허구는 진실에 기반을 둔 것이다. 라고 수정한다. 어설픈 허구에 비웃으며 시작한 잭은 극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진실에 기반을 둔 허구에 눈물짓는다. 극중에서 셀리는 잭에게 말한다. 화장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추측컨대 매체에 대한 명백한 비유였음이 분명하다. 그 비유를 받아 나 또한 앤딩에서의 잭의 눈물을 그 연장에서 한 번 비유해보고 싶다. 말하자면 마지막의 잭의 눈물은 화장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맨얼굴에 있음을 뒤늦게 뉘우친 자의 눈물일 것이다. 거짓일 수밖에 없지만 그 거짓은 진실 없이는 불가능한 거짓이며 때론 진실 이상으로 파급력이 강한 것. 아마도 <필사의 추적>을 통해 영화의 감독 드팔마가 매체에 내린 정의를 거칠게 요약해본다면 이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