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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와 파랑새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를 본 적은 없는 나에게 '리즈와 파랑새'는 상당히 놀라운 멜로 영화였다. 등장 인물들에 대해 전혀 모른 상태로 이 영화를 봤지만, 첫 몇 분만으로 주인공들의 대략적 관계와 성격을 최소한의 대사와 굉장히 섬세한 인물 연출로 바로 설정하며, 소외된 느낌없이 바로 이 인물들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교토 애니메이션의 자랑인 얕은 초점 연출이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오로지 미조레와 노조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섬세한 표정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포커싱이 단순한 시각적 기믹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요소로 쓰인 점이 정말 좋았다. 청록빛 색감으로 통일한 배경 작화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사소한 표정과 눈빛 변화, 그리고 몸짓들을 최대한 많이 표현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 연출도 관객이 실시간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이 영화의 모든 시각적 연출은 미조레와 노조미의 심리를 바라보기 위해 초점이 맞춰져있다. 동시에 이 영화는 음악 영화이기도 하다. '리즈와 파랑새'라는 가상의 동화로 미조레와 노조미의 관계를 우화적으로도 설명하고, 동시에 이 둘이 이 동화를 통해 서로의 관계가 어떤 성격인지를 깨닫게 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동화를 바탕으로 한 두 주인공의 콩쿠르곡을 통해 영화는 음악적으로도 이들의 관계 역학을 표현하려고 한다. 음악 자체도 정말 아름다웠지만, 클라이막스에서 미조레와 노조미의 연주는 음악으로 스토리의 절정을 전개하는 중요한 스토리텔링 요소이기도 했다. 원작 시리즈에서 이 둘의 캐릭터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이 영화로 봤을 때는 퀴어 멜로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힘든 감정이 얽히고 섞이며, 조용한 미조레와 명랑한 노조미의 관계가 어떻게 풀릴지 굉장히 조마조마하면서 봤다. 섬세하고 디테일한 감정 드라마에 온 힘을 다하여 집중한 연출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들과 같이 설레는 잔잔하고 맑은 이야기를 잘 펼친 올해 최고의 재패니메이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