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김다정

김다정

5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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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안의 블루

영화 ・ 1992

평균 2.9

이게 92년도의 영화라는 걸 좀 기억하고 평가를 하길 바란다. 당대 기준으로는 파격을 넘었고. 현대 기준으로는 어설픈 신좌파의 이상주의 판타지를 넘어 오히려 더 현실을 비추는 영화에 가깝다. 솔직해지자. 지금도 김유림과 같은 조건의 여성은 결국 김유림이 바라는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결혼식에 달아나고 내연남이 있었으며 충동적인 성향이 잇는 여자를 누가 바라나? 심지어 그럼에도 연애와 결혼, 그리고 사랑이라는 환상을 오래도록 거부하지 못한 건 김유림이다. 이건 찌질한 남성들과 실없는 여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인물들의 변화를 그린 이야기다. 결국 김유림과 이호석은 현실을 꾸준히 극복해내며 긍정적으로 변화하건만 '성별'과 '사상'에 매몰된 우리 자칭 '시네필'들은 사상에 매몰되어 알량한 아가리를 멈출 줄을 모른다. 영화는 김유림의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적극적인 여자와 수동적인 남자의 고전적인 조합을 기초로 하는 로맨스 영화다.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생의 발랄함을 뽐내며 주체적인 인생을 구가하는 여자, 김유림이 있다. 과거에 얽매여 인간적인 사랑과 유대를 거부하는 남자, 이호석이 있다. 두 주인공의 모습은 철저한 대비를 이룬다. 사랑에서든 직업에서든 김유림은 관계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주도적이다. 먼저 관계를 시도한 것은 김유림이며, 먼저 관계를 정리한 것도 김유림이다. 여성인 김유림을 남성인 이호석이라는 캐릭터가 조종했다는 얕은 비판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의 착각과 달리, 이호석은 김유림을 자신의 작업실에 끌어들일 때만 주도적으로 보였을 뿐, '관계'에 있어서는 굉장히 수동적인 인물이다. 그저 가오잡는 모습만 넘칠 뿐이지. 작중에서도 그 한계는 끊임없이 보여지며 이호석과 김유림의 입을 빌려서도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마네킹을 원할 뿐이에요." 안성기의 연기에 대해 현대의 관객이 특히 호불호가 강한데, 난 해당 영화에선 안성기의 연기는 참 괜찮았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의 성벽을 넓고 높게 쌓다가 끝내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태도가 달라지는 꽁하고 찌질한 예술병 작가주의 디자이너의 모습은 참으로 볼만하다. 어색해 보인다고? 그럼 찰떡이지. 예술병 걸려서 까칠한 게 간지나는 줄 아는 찐따들이 딱 그 수준이니까. 영화에 있어서 본질적인 질문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90년대에 수입된 젠더 담론을 좀 어설프게 끼얹은 거지. "일이냐? 사랑이냐?" 영화의 역사에서 이건 끊임없이 변주되더라도 놓칠 수 없는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