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전영탁

전영탁

4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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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에이티식스- 2기

시리즈 ・ 2021

평균 4.5

간결하지만 깊이가 있어 강렬한 힘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뚝심 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감독은 스토리와 플롯의 빈 자리를 독창적이고 생생한 시각성, 은유와 상징의 연쇄를 통해 채운다. 그리고 치바 쇼야의 뛰어난 연기력은 작품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다. 작품의 시간은 신에이 노우젠이라는 단 한 명의 인간에게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고독한 여정이 단지 무의미한 고통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거대 서사와 미시 서사, 그 양자간의 대립과 긴장감 사이에서 오롯히 주제의 본질을 탐구하겠다는 작가주의적 숭고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의 마지막은 마치 작은 선물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감독이 신에이 노우젠에게 선사하는 기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의 지난한 여정을 끝까지 지켜 본 관객에 주는 대가이기도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앞으로 살아 갈 인류 개별자와 총체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메세지일 지도 모른다. 작품은 영상 예술의 본질이 시적인 정서에 있으며, 읽는 것이 아닌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론을 통하여 그 동안 장르적으로 소비되어 온 믿음과 기적이라는 주제가 어째서 숭고한 것 인지를 관객에게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든다. 신에이 노우젠을 중심으로 한 부활의 이야기, 그 밑에 깔린 희망의 알레고리는, 인류의 역사가 실은 사소한 기적의 연속에 다름 없었으며, 그렇기에 작품은 인류가 앞으로 다가올 시간 속에서 언젠가 구원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금 어두운 시대에 접어드는 지금, 86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위치에서 필요한 메세지를 인류에게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 내내 이야기되는 별과 밤하늘의 상징이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난 모든 절망과 희망의 시간이, 실은 우리가 그것들에 손을 뻗었을 때에만 의미를 지녔다는 그 사실을, 이 작품을 본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이것은 그 증거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p.s: 간혹 2쿨을 일컬어 1쿨 보다 재미없다, 지겹다, 단순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삶의 이유를 잃었던 사람이, 다시 생을 시작하게 되는 그 고통스러운 내면과 과정을 관객에게 마냥 즐겁게 다가오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면, 그런 작품을 향해 훌륭하다 말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 평가일까? 어째서 최근 전쟁 영화들 사이에서 이야기와 플롯, 서사의 전형적인 사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지, 어째서 그 상황과 인물의 감정 자체를 어떤 방식으로든 체험 시키려 노력하는 지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이 추구하는 형식의 지점을 잘못 해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와 플롯의 적극적인 사용을 거친 현실의 재현은 분명 역동적이고 매혹적이지만, 때로는 현실의 모습을 지나치게 왜곡하는 단점 또한 지니고 있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을 통하여 말하고자 했던 스펙터클의 위험성이 현 일본 애니메이션 내, 이야기 구조의 형식 속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 된 것은 아닐까. 애니메이션이 반드시 스토리와 플롯의 힘을 바탕으로 과장된 장르적 표현의 즐거움을 주어야 할 사명은 없다. 현실의 본질을 생생하게 그려내려는 어떤 작품들은 때때로 읽기 전에 앞서, 먼저 순수하게 보고 느낄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