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upang2003

오역하는 말들
평균 3.3
‘번역가에에 고역은 그저 괴롭고 끔찍한 존재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오역을 실수로 인정하고 유용한 도구로 여길때 얘기지만, 상사의 일상적인 질책 같은 게 없는 번역가에게 오역은 자기 결과물을 강제로 돌아보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속 쓰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완해야 할 결점들을 지적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그것들을 보완하면 보완한 만큼 어제보다 더 나은 번역가가 된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내일 마주할 번역 현장에선 어제보다 한발짝이라도 앞선 자리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번역가에게 오역은 이렇게 애증의 대상이다. 도망칠 수 없는 필연적인 저주인 동시에 결국 나를 키우고 자성하게 하는 존재다.’ -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는 번역가로서 가장 두려운 단어를 ’오역‘으로 꼽는다. 마감보다 더 무섭고 때로는 소비자의 지적이 비전문적이라 흘러보낼 수 있어도 드물게 정곡을 찌르는 비판은 큰 상처가 된다. 경력 초반에는 그런 지적에 방어적으로 반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역을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받아드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오역은 번역가에게 고통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게 하고 발전시켜주는 존재다. 매일 더 나은 번역을 위해 어제보다 나아지기 위한 반복의 과정에서 오역은 애증의 대상이자 필연적인 동반자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일상 속 오역은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 때론 오해를 줄이기 위해 혹은 관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의도적인 다정한 오역이나 현명한 오역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와 반대로 사람을 상처 입히거나 사익을 위한 악의적 오역도 존재한다. 저자는 20년 동안 번역을 해오며 세상을 번역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 책은 언어적 번역이 아닌 일상과 인간 관계 속 오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 속 그의 이야기들도 참 인상 깊지만 그의 손목에 있는 ’세상을 번역하다‘라는 문장은 오랫동안 기억될 듯 싶다. 자신의 삶 전체가 번역의 연속이며 오역과 성찰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라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자꾸만 매료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저자의 삶과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나는 나의 세상을, 또는 다른 이의 세상을 어떻게 번역하였고, 또 오역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