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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

천수경

2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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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책 ・ 2023

평균 3.9

걔는 어떤 사람인데, 라는 물음에 나를 대체할 사람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면 정색하지 않는 친구가 없었다. 내가 죽으면 그 빈 자리에 그 사람이 들어와도 너희가 그럭저럭 흡족할 것 같아, 라고 해버린 후엔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을 얘네한테 소개해주긴 글렀구나 싶었고. 내 오만을 헛소리로 치부하는 이들을 보아하니 내가 누구를 데려오든 그 사람이 나보다 덜한 이유, 나를 대체할 수 없는 이유를 오백 가지 댈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내가 사라진 자리를 채워주길 바라는 것은 물론 그 후임자에게 무례한 상상이지만, 이런 상상을 무례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만 콕 집어서 염두에 두기 때문에 괜찮다. 그러니까 내겐 부족한 모든 것, 나를 살려둘 정도로는 충분치 못한 사람들, 내가 견디지 못하는 모든 곳을, 충분하게 여겨주고 너그러이 견딜 수 있을 사람만 고른 것이다. 내 죽음은 가해로서만 의미 있을 것이라는 집념의 시절을 지나와 이젠 그저 보편적인 주장, 심지어는 진부한 메시지일지라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오독의 희생양이 될까봐 죽지 못하고 있다. 내가 남들의 독해력을 믿지 않는 게 문제다. 죽고 나면 추신을 덧붙이지 못하고, 살아서만이 내 죽음에 관해 첨언할 수 있는 게 문제다. 지금 죽으면 내 자살이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고작 내 시체의 코앞에서 멈출까봐 차마 죽지 못한다. 웃긴 일이다. 이런 방지턱들은 내 손으로 직접 조립해서 세워두는 것인 반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살이 분해되는 순간들도 있다. 많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훨씬 깊이 스며들어 오래 영향을 끼친다, 종종 도착할 뻔하다가 마는 나의 죽음에. 이를테면 쪄 죽겠는 열대야의 공원에 나란히 앉아 각자 폰을 보는 노인과 아이. 두 사람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미니’ 선풍기를 챙겨 나와서 옆에다 틀어뒀다. 집구석이 왜 갑갑했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상황의 개선을 위해, 더 나은 상태를 위해 야밤에 그렇게 바깥 공기를 쐰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감격스럽던지. 아니면 또 이런 것. 길거리에 흩날려 나부끼는 냅킨 한 장을 줍겠다고 최선을 다하는 중년 연인 한 쌍. 냅킨은 한겨울의 서울 길바닥과 진즉 원치 않은 입맞춤을 하여 더러워진 상태인데도 두 사람은 길거리에 ‘실수로’ 쓰레기를 버린 사람은 되지 말자고 다짐하듯 그것을 하염없이 뒤쫓아 기어이 잡았다. 바로 세 걸음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그 냅킨을 버리는 둘의 뒷모습은 의기양양했다. 그런 순간들에 나의 죽음이 언제까지 순하게 기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은 꽤 자주, 불시에, 그런 순간들을 맞닥트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