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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곤

린곤

7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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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책 ・ 2016

평균 3.8

2019년 07월 14일에 봄

내가 한국에 있으면 무력감이 극대화되는 이유: 남들과 같아지라, 조용히 하라, 무덤덤해지라 고 끊임없이 세뇌하기 때문. 모두 여자 같은 여자, 남자 같은 남자, 애 같은 애, 어른 같은 어른, 세상 위엄 있고 깨끗한 갑, 순종적이고 아부 잘 하는 을, 등등등 역할놀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고, 약간의 독창성도 안정성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 싸늘한 눈초리로 침묵시키려 한다. 안정성이라고 착각하는 현실은 그저 많은 부분 숨막히는 전통일 뿐인데도. 한국에서 개인의 순수한 관심이나 개성은 '덕질'로 희화화되고, 타인을 이상화하여 자아실현의 기회에서 도피하고 대리만족을 하는 덕질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들 그렇잖아, 그냥 여기서 숨죽이고 만족하며 살자, 튀지 마, 잘난 거 없으면 조용한 게 장땡이야. 이 나라에서 놀라운 부분은 무기력한 사람들이 없는 기력을 쥐어짜내 또 서로가 더 무기력해지도록 장려하는 데 쓴다는 점이다. 소비를 하면 돼. 연애를 하면 돼. 시험에 붙으면 돼. 돈 많이 벌면 돼. 안정된 직장을 잡으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면 돼. 모두가 거짓이라는 걸 아는 거짓말에 목을 맨다는 점이 가장 비극이다. 그리고 그 거짓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겠지. 대안을 찾는 과정에는 절망이 동반하고 사람을 믿는 과정에는 크고 작은 실망이 따르니까. 1930년대에 분석한 내용이 8-9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은 현대인의 무력감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 원인은 파악했지만 제시된 해결방법은 원인 만큼 선뜻 이해하고 소화하기가 힘들다. 대안적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해서일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인 나도 삶의 어느 영역에서는 열심히 대안을 찾고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낙관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서 삶의 의미를 잊다가도 다시, 놓치다가도 다시, 곱씹고 붙잡게 된다. 삶은 어차피 좌절과 희망의 연속. 그리고 가만히 과거를 돌아보면 선배 파이터들이 일구어놓은 밭에 내가 다시 씨를 뿌리는 장면이 그려진다. 내 손에 쥔 이 씨앗과 내가 두 발 딛고 서있는 이 흙은 결코 내가 무에서 창조해낸 것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 선생님의 처방: 감탄하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갈등을 받아들이라. (여성성 남성성 운운하며 꺼낸 양극성 이야기는 실소가 나왔으니 양극성은 빼야지) 성인이 되고나서는 두번째가 가장 어렵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할 일을 모두 완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