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신상훈남

신상훈남

2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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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 2023

평균 3.4

2023년 10월 25일에 봄

우리는 아득한 시간과 장소를 여행하며 탑을 쌓는다. 그곳엔 풍요와, 평화와, 아름다움이 가득하기를. 졸다가도 황홀스러운 꿈을 꾸게 될 영화. ”우리는 다들 굶주릴 수밖에 없어. 그래서 날아올랐지. 더 높이 날기 위해.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기 위해. 새로 태어난 아이는 나는 법을 몰라.” 지브리는 늘 우리가 보고 싶었던 것만 보여주었다. 제목만 봐도 그렇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보기 쉽게, 영화의 인물이나 내용을 제목에 드러내곤 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하야오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닌,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히토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마히토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그 의미처럼.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사랑했고, 영화를 사랑했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그리고 그의 애니메이션을 봐주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과도 같다. “모든 왜가리는 거짓말쟁이라고 왜가리가 그랬어. 이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살 것인가‘라는 표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살아갈 것인가‘ 혹은 ’살아남을 것인가‘ 어쩌면, 전부일지도. i)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히토는 갑자기 나타난 여인을 자신의 모친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예의를 갖추다가도, 속으로는 벽을 세우고 있는 태도가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그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인‘이어서가 아니다. ’가족에게서 도태되었다‘는 그녀를 향한 동정심과, ’행복을 공유해야 하는 가족관계의 필요조건‘이라는 마음가짐. 모두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이었기에. “이 세계가 아름다운 세상일지, 추악한 세상일지 너의 손에 달려 있다.“ ii)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마히토는 늘 무기를 손에 쥐게 되지만, 결국 그 어떠한 살생도 저지르지 않는다. 자연적으로 그에게 발생한 ‘죄악의 기회’를 거부한다. 어서 자신을 죽여달라는 펠리컨의 간곡한 요청에도 그는 가만히 있었다. 이처럼 마히토에겐 일말의 악의조차 찾을 수 없다가도, 계속해서 보이는 그의 이마에 난 ‘흉터’는, 분명 그의 비겁한 악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악의의 순간’에 마주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타협하며 죄를 저지르고, 이후 후회하거나 좌절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은 삶 앞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저지르지 않을 수 없고, 품지 않을 수 없는 ‘악의’ 앞에서 조금이나마 초연해질 수 있기를. 결국 때타지 않은 돌들을 만지지 않는 마히토처럼. ”이 상처는 내가 만든 거예요. 내 악의의 증거죠. 전 그 돌을 만질 수 없어요.“ 머리에 난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흉터로 남는다. 그 곳에 새겨진 흉터는 머리로 덮어 충분히 가려질 수 있지만 영화 내내 우리는 마히토의 흉터를 보게 된다. 왜 하야오는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 흉터는 끊임없이 강조된다. 살면서 안 날 수 없는, 흉지지 않을 수 없는 그 흉터를 보며, 우리는 그것에 초연하며 어떻게 그 흉터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 흉터를 계속해서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파도가 온다. 저 파도가 지나가면 평안해지지.” 잔잔한 바닷결에 묵직한 파도가 출렁인다. 사운드트랙은 과하지 않으며 영화의 모든 부분들은 절제되어 있다. 인물들의 내면 묘사는 감정선을 흘러 넘치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풀밭들은 거세지 않고 평화롭다. 우리는 잔잔하게 움직이는 바다 앞에서, 가끔씩 밀려오는 묵직한 파도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 순간이 있다. 파도가 철썩이고, 바닷물의 표면끼리 부딪치는 그 순간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영화의 명장면 📽️] 1. 태어나는 것들 우리는 모두 태어났다. 기준은 항상 ‘태어난 시점에서부터’ 지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토록 귀여운 와라와라들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날아올라, 태어나러 간다. 태어나서, 뭔가를 경험해볼 수 있고, 또 다른 뭔가를 느낄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바다에 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많지 않은 이 저주의 바다’에서의 펠리컨들에겐, 지금이 유일하게 좋은 순간이었다. 그들은 와라와라들의 비상을 방해한다. ‘태어나기 이전의 고난에서의 자연적 흐름’에 헷갈려하던 그 때, 히미가 등장한다. 펠리컨들은 불타서 하늘에서 폭발한다. 나는, 이 때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쁘지 않아도, 자연스럽다가도, 이런 아름다움은 처음 겪는 것이었으니까. “얘들은 성숙해지면 날아가지.“ ”다들 어디로 가는 거죠?“ ”태어나는 거야. 너가 왔던 곳으로.“ 2. 무너지는 탑 또 하나의 세상인 탑이 무너져 내리지만 그것에 아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곳은 누군가에겐 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 해 선택한 도피처였고, 누군가에겐 재앙이 닥칠 걸 알고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굳은 결의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뚜렷하게 알지 못 했던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소중한 곳이기도, 결국 잊지 못 할 아름다운 ‘기억’이 되어주는 곳이기도 했다. ’기억이 나기에’ 그곳의 붕괴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 하물며 정신없이 날갯짓을 하는 모든 생물체들에게까지도. ”불은 무섭지 않아. 널 낳는 건 좋은 일이잖아.“ 마히토의 흉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더 이상 흉터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더 이상 보여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잊어버려, 보통은 다 잊어버리거든. 점점 잊어버릴 거야. 그러면 돼. 잘 있어,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