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윤제

여름이 지나가면
평균 3.6
2025년 07월 08일에 봄
“너가 저 애들하고 같은 줄 아냐”는 물음에 기준은 뭐가 다르냐고 반문한다. 그 순간 기준은 자신이 영문, 영준과 ‘뭐가 다른지’ 알지 못한다. 기준의 이 무지는 어른들의 ‘다르기 때문에 섞여선 안 된다‘는 외침만큼이나 해롭고 역겹다. 기준과 영문, 영준은 플스 피파온라인과 시골 동네축구만큼, 차 2대와 오토바이 1대만큼, 매일 바뀌는 수십 벌의 옷과 매일 똑같은 단 한 벌의 옷만큼 다르다. 농어촌특별전형을 위해 초6부터 시골에 이사를 오는 극성 부모를 둔 기준이 부모가 존재하지도 않는 영문, 영준과 자신이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는 것은 역겨운, 정말이지 역겨운 일이다. 영문, 영준과 자신이 뭐가 다른지 인지하지 못하는 기준이 영문을 모방하는 이유는 멋있어 보여서, 재밌어 보여서다. 멋있어 보여서 옆 학교 학생에게 돈을 뜯어내고, 재밌어 보여서 자전거를 훔쳐 되파는 기준에게서 영문이 느끼는 그 순간적이고 이유 모를 위화감과 불쾌감은 돈 많은 서울 쥐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가난한 시골 쥐만의 것이다. 영문이 가진 반항성의 근원이 되는 빈부와 지역의 문제, 곧 계급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오직 그 표면의 반항성에만 매료되어 이를 모방하는 기준의 ‘반항‘은 그래서 못 봐주게 역겹다. 영문, 영준과 어울리며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기준을 보며 기준의 모친은 영문이 기준을 망쳐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기준을 망쳐놓은 것도 기준이고, 영문과 영준을 망쳐놓은 것도 기준이다. 영화는 그 서두에서부터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뛰노는 시골 아이들과 집에서 홀로 온라인 축구 게임을 하는 도시 아이 기준을 대비하며 시작한다. 도시와 시골 사이 대립 구도를 부단히 강조하는 영화 속에서 도시 아이 기준은 오프라인 축구의 세계에 침입해 온라인 축구 게임을 들여오며 그 세계를 물들여 오염시킨다. 영문, 영준에게 선뜻 플레이스테이션을 건네줄 때 기준은 (비록 그와 같은 악의는 없었지만) 사실상 중국인들에게 선뜻 아편을 팔아넘긴 영국인들과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영화가 감정적으로 가장 큰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순간은 자신에게 말초적 쾌락을 선사하던 것이 돌연 자신을 다시금 가난과 범죄의 굴레로 밀어넣을 때 영문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이 너무나도 투명하게 스크린 위에 떠오를 때다. 이 여름이 지나가면 영문, 영준은 시골 집 대신 청소년 수용 시설에서 진짜 축구 대신 온라인 축구 게임을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여름이 지나가면 영문, 영준은 추방되어 고립될 것이다. 어느 시골의 여름을 제대로 망쳐놓고 떠난 도시인에게 이 여름은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기억되겠지만, 누군가에게 이 여름은 생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순간순간 등장하는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들이 기억에 남는다. 더러운 돈으로 산 물건은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듯 기준의 모친이 버려두고 간 플레이스테이션을 영문이 다시 주워가는 장면, 기준의 운동화를 훔쳐간 세 명의 아이가 흐릿하게 찍힌 cctv 화면 속에서 매일 같은 옷을 입는 영준만이 옷 색깔로 인해 범인으로 특정되는 장면이 그렇다. 영문, 영준이 어두운 경찰서 복도에서 마치 저 너머 다른 세계의 경계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듯 기준을 바라보는 장면은 섬찟함을 전해주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