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일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평균 3.6
동화와 그의 애인 준희의 아버지가 산을 오른다. 산 정상에 소박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벤치. 준희의 아버지는 들판에 뜬금없이 놓여있는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자신의 아지트라 소개한 뒤, 그 안에서 막걸리를 꺼내 온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하는 두 사람. 정적인 화면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흐른다. 주제는 '효심'. 그리고 이따금 동화는 자신이 얼마나 준희를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한다. 이를테면 준희를 마음씨 고운 천사와 비유하는 식으로 말이다. 카메라는 그들의 긴 대화를 픽스 숏으로 찍다가, 이내 한 번의 줌 아웃을 행한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줌 인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간다. 하지만 그 줌 인은 어딘가 이상하다. 마치 계산된 촬영이라기보단 뭔가를 잘못 눌러서 의도치 않게 당겨진 줌 인처럼, 동화와 준희 아버지의 모습은 프레임을 뚫고 기묘하게 사각지대의 끝에 걸친다. 어느새 둘 사이에 끼어든 나뭇잎. 사실 그 나뭇잎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다. 그 둘이 벤치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기 전부터, 아니 어쩌면 십 수 년 전 벤치가 그 자리에 설치되기 이전부터 나뭇잎을 형성하고 있는 나무는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원래부터 일찍이 자리 잡고 있었던 나뭇잎의 자리에 둘의 존재가 불현듯 끼어든 것. 힘겹게 눈동자를 굴리며 프레임의 양 끝에 불편하게 걸쳐져 있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관객은 차라리 그들의 사이에 있는 나뭇잎을 응시하기로 택한다. 보기 좋은 편한 자리에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흩날리는, 그러나 그 무엇보다 평안한 자태로 살랑살랑 움직이는 나뭇잎. 그 자연은 자신의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화와 준희 아버지의 만담에 슬며시 동참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생각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누군가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냥 옆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고 말하라는 듯이. 준희 아버지는 동화에게 질문한다. 안경을 벗어도 준희가 잘 보이느냐고. 그 뒤에 혼자서 자신의 질문에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아, 오히려 예뻐 보이려나.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줄곧 흐릿한 이미지로 일관한다. 마치 눈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처럼, 깨끗하지 못하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깨끗함에 집착한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언니를 보고 소리가 깨끗하다 하는 준희와, 동화의 시 낭송을 듣고 깨끗한 시라고 칭찬하는 준희의 아버지. 하지만 그들의 깨끗하다는 말에는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정말 맑고 깨끗하다고 느껴서 하는 진심 어린 칭찬이 아닌, 이 상황을 민망하지 않게 타파하기 위한 계산된 언어적 술수처럼. 홍상수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한다. 당신이 안경을 쓰고 더 깨끗한 세상을 바라보려는 것은 일종의 집착일 수도 있다고. 안경이라는 시선을 걸러내는 과정 없이 그냥 바로 자신의 안구에 투영되는 자연으로 우거진 세계. 그 세계만이 어쩌면 그대들이 그토록 원하는 진실에 가장 입각한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동화의 아버지는 변호사이다. 극 중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준희 가족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하 변호사'라는 이름. 하지만 정작 동화는 재차 언급되는 아버지의 존재가 그다지 달갑진 않아 보인다. 일부러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지우기 위해 스스로 완전한 독립을 택한 동화. 그러나 준희의 언니는 자꾸만 동화의 앞에서 그의 아버지를 언급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뒤에 있잖아요.' 단순한 독립으로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 결국 동화는 준희 가족과의 술자리에서 폭발하고 만다. 무슨 짓을 해도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벽,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란 존재가 동화에게 있어 얼마나 거슬릴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동화는 돈을 숭배하는 아버지가 지겨워 그의 곁을 떠나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소유의 삶을 원하는 그의 귀에는 자꾸만 세속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이름이 들려온다. 동화는 정말로, 한치의 거짓 없이 진실한 무소유의 삶을 원하는 것이 맞기는 할까. 사실 아버지란 존재가 너무 싫어서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했기에, 돈을 숭배하는 그를 닮고 싶지 만은 않기에 억지로 자본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그런 동화의 마음은 진실이 아닌 욕망에 가깝다. 무소유의 삶에 대한 욕망, 집착. 절에서 준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화에게 화를 낸다. 너가 생각하는 그런 삶의 태도야말로 성급한 재단이고, 그릇된 행위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동화는 자신의 시에 밤에 피는 꽃은 빛난다고 쓴다. 그리고 그 말을 믿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쓴 그 말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알지 못한다. 야밤에 산에 올라가 아름답게 핀 한 송이의 꽃을 바라보지만 그 꽃의 빛은 자신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불빛일 뿐, 꽃이 스스로 빛을 내뿜는 순간은 마주하지 못한다. 심지어 하산을 하다 넘어져 팔에 굵은 상처가 생기게 된 동화. 동화는 전 날 저녁 준희의 가족들에게 술에 취한 채 몹쓸 짓을 한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사과할 용기가 없는 그는 차라리 도망가기를 택한다. 하지만 그의 도망은 얼마 안 있어 좌절된다. 96년도에 만들어진 그의 낡은 중고차가 고장 나버린 것. 동화의 무소유에 대한 의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해 주던 중고차의 수명은 그렇게 끝이 난다. 이제 동화에게는 한 개비의 담배만이 남았다. 그토록 의지하던 중고차마저 곁을 떠나버린 현재, 동화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