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훈남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평균 3.2
2024년 05월 08일에 봄
시저는 인간에게 위협을 당하고 가족을 잃으면서도 결코 인간을 미워하지 않았다. 시저를 따뜻한 손길로 사랑해준 윌과, 굶어가며 무기력해진 시저에게 마실 물을 건네준 노바 역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종족’을 논하기엔, 시저는 ’몇몇‘을 사랑하고 ‘몇몇’을 증오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증오심마저, 그는 전편에서 대령을 쏴죽이지 않음으로써 지워버리는 데 성공했다. 시저를 등장시키지 않아도 시저의 위대함과 전편의 여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게끔 한 연출은 이 시리즈를 처음 맡게 된 감독의 멋스러운 예우가 아니었나 싶다. ”유인원을 위한 게 아니었어.“ ”유인원을 위한 게 뭔데? 그럼 다시 침묵으로 돌아가야 돼? 우린 우리의 집을 다시 지을 거야.“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나치게 ‘상황 설명’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다. 빠른 템포로 영화의 체감 속도를 높여도 모자랄 판에 ‘이미 관객들이 지레짐작하며 넘길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친절한 걸 볼 수 있다. 이것은 ‘유인원이 갈수록 지능이 높아져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정’도 크게 작용했다. 전편들의 유인원들은 ‘대사 하나 없이’ 심리가 묘사되곤 했는데 그것이 처참히 무너져 ‘꾸역꾸역 끼워넣어지는 대사’들에 대해 진절머리 나는 지경까지 도달했다. 앞서 나온 <혹성탈출>은 흐름에 있어 관객들을 압도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라고 말하는 듯 서사는 간결했고 대사는 침묵이었으며 내용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이번 작품은 아니다. ’이 대사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 스토리는 이렇게 전개되는 겁니다‘ 의도가 다분하여 불편하기까지 한 느릿느릿한 속도감. ”유인원과 인간이 함께 살 수 있을까?“ <메이즈 러너> 감독답게 ’디스토피아적 분위기‘ 자체는 시리즈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구현해내었지만, 그 이외의 ’혹성탈출의 매력‘은 당최 찾아볼 수가 없다. 원작 혹성탈출에 가까워진 부분은 좋았지만서도 ’원작에서 이미 다 봤던 것들‘을 또다시 재사용한다는 의아함과 <메이즈러너>에서 다뤘던 토마스의 ‘알파메일적 캐릭터‘는 또 이번 작품에서 하나도 부각되지 않았다는 실망감이 이 영화의 발목을 제대로 붙잡았다. 뭔가 ‘다른 감독에 비해 혹성탈출을 비교적 유리하게 잘 살릴 수 있다는 연출력’ 을 갖고 있으면서 ’혹성탈출의 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다. “내가 기회를 줬는데 왜 돌아오지 않을 과거나 꿈꾸고 있는 거야?” [이 영화의 명장면] 1. 노아의 추락 무미건조했던 초반의 흐름을 단숨에 박살내는 전환. 상황은 순식간에 심각하게 변하며 관객들의 심장박동은 빨라진다. 주인공 ’노아‘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는 ‘긴 빌드업’ 덕분이다. 필요이상으로 길었던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덕에 이 장면의 긴박감이라든지 노아가 느꼈을 심각성이 더 잘 와닿을 수는 있었다. 가면을 쓴 유인원들이 시저의 이름을 외칠 때면, ‘도대체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흥미를 유발하기도 했다. “시저를 위하여!” 2. 얼룩말 이 장면은 <혹성탈출>의 원작을 닮아있다. 말을 타고 등장하는 유인원들이 이내 인간을 하나둘씩 포획하는 장면은 아직까지 충격으로 남아있다. 그 장면이 되풀이되어 ‘아 이제서야, 예전의 혹성탈출을 닮아가는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 달랐던 점은, 원작에서의 이 장면은 ‘그 행성에 사는 유인원들의 자연스러운 사냥’ 같은 느낌이라 별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이 장면에선 ’인간이 유인원에게 당하고 있다‘는 분노의 감정이 들었다. 이 이질감과 몰입감을 살려낸 데 있어서는 이 영화가 그나마 잘 살려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이름이 있어, 메이.“ 메이는 끝까지 ’여차하면 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확신과 믿음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노아가 채워준다 남은 것은 ’변화‘와 ’공생‘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