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모든 것을 통찰한 위대한 명저
올컬러 도판 수록한 정식 한국어판 출간
수만 년간 힘을 발휘해온 이미지의 위력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어떻게 인간사회를 결속시키고 흩어놓고 파괴하는가
이미지를 움직이고 활용하는 자들의 신학, 정치학, 미학
■ 매개론의 창시자, 레지스 드브레의 이미지론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문인으로 새로운 인문학적 방법론인 ‘매개론mediology’을 제창한 레지스 드브레가 펴낸 Vie et mort de l'image(1992, 갈리마르)의 완역본이다.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운동을 전개하다 수형 생활을 한 경력이 있는 레지스 드브레는 그러한 경력 때문에 더욱 의외로 여겨지는 이미지에 대한 매우 해박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영상을 비롯한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을 읽기 위한 도구로 매개론mediology이라는 인문학의 한 방법을 제안한 그는, 이 책은 “매개론의 방법론을 이미지에 적용한 첫 번째 응용서”라고 할 수 있다. 레지스 드브레는 이 책에서 기원전부터 인류의 정신사에 쌓여온 매우 방대한 미술사적 텍스트와 신화, 박물지 등을 유기적으로 통독하면서 이미지라는 것이 어떻게 발생해서 실재가 재현되며, 그러한 이미지가 점점 힘을 갖기 시작하면서 결국 실체를 대체하고 모든 것을 지배하는 오늘날 세상의 메커니즘을 밝힌다.
■ 근 20년 만에 전면 개정판 출간
이 책은 지난 1994년 『이미지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이 나와 미술 및 영상 관련 전공자들의 필독서로 읽혀왔다. 그러나 정식계약판이 아니고 번역 및 편집체제의 미비함 등으로 아쉬움이 있던 차에, 역자 정진국 선생이 번역을 전체적으로 개정하고 가다듬어 근 20년 만에 전면 개정판을 펴내게 되었다. 이번에 개정된 글항아리 판 『이미지의 삶과 죽음』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와의 정식 계약체결을 통해 출간되었으며, 책의 내용이해에 필수적인 이미지 자료 수백점을 올컬러판으로 수록해서 선보이게 되었다.
■ 신화적 상상력과 통찰로 가득한 이미지의 역사
이 책의 아카데믹한 정체성은 물론 “매개론의 방법론을 이미지에 적용한 첫 번째 응용서”라는 데 있다. 하지만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라 이미지의 장구한 역사를 훑어내려오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드브레의 신화적 상상력, 예리한 관찰력에서 탄생하는 주옥같은 명문장들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기원’ ‘예술의 신화’ ‘구경거리 이후’ 등 총 3부 12장에서 드브레는 “죽음”에 의해 이미지가 탄생했으며 그를 통해 “상징적 전달”이 탄생하는 과정, 기술매체를 이용한 시각적 재현과 그것을 실재로 믿는 사람들의 신념이 결합해 생겨나는 심리를 “종교적 유물론”으로 개념화하면서 ‘이미지의 세계’가 구축되는 초기 양상을 살핀다. 그런 후 이미지가 ‘예술’의 영역을 화려하게 꽃피운 시대를 가로지르면서 ‘역사의 끝없는 순환’ ‘고미술이라는 유령’ 이미지의 파노라마에서 우상기로 다시 예술기로 넘어가는 ‘시선視線’의 세 시대를 통관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사진이 준 충격’에서 시작되는 근대의 격변적 연대기를 다룬다. 영화, 비디오, 컬러텔레비전 등이 바꿔놓는 시각적 재현의 여러 양상들, 그로 인한 인간 지각체계의 변화와 그가 ‘집단적인 무사고’라고 표현한 문제점들을 짚어낸다.
■ 이미지의 막을 꿰뚫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눈 제공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이 책에 대해서 “이미지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젊은 주부들이, 「애인」이라는 드라마를 본 후 그것을 따라하지 않으면 첨단의 유행에 뒤지는 것처럼 경쟁적으로 애인 만들기에 나선 것처럼, 그림이 이 세상을 닮은 것이지 이 세상이 그림을 닮은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세상이 그림을 닮았다고 한다. 이렇게 뒤집힌 사회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대중을 지배하는지에 대해 매개론을 통해 밝힌다. 더 나아가 이미지를 넘어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눈을 제공한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 ‘이미지란 무엇인가’ 대신 ‘이미지란 어떻게 생겨나는가’
이처럼 『이미지의 삶과 죽음』은 “이미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대신 “이미지는 어떻게 생겨나서, 무엇을 통해 전파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데 그 독특함이 있다. 저자가 주창한 매개론은 신문, 방송 같은 대중매체 연구는 아니다. 더 넓은 사회, 문화, 역사의 현상으로서 문자와 도상 기록을 비롯한 상징적 소통 문제를 연구한다. 특히 어떤 지리적 ‘장소’와 책과 같은 ‘기록’ 문화를 주목한다. 이것들에 우리의 관념과 감정과 감각이 깃들고 또 그런 것을 소통시키는 실질적인 자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인류의 집단생활에서 갖는 이미지의 위상
드브레는 본문에서 인류의 집단적 사회생활에서 이미지가 어떤 위상과 성격을 갖는지 계속적으로 환기시킨다. 이미지는 무엇보다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존속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것이 우리의 결핍을 채우려는 성스러운 것에 대한 숭배, 초월적 존재에 대한 염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단순한 실용적 통신 수단을 넘어서, 이미지는 현실적인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는 허깨비로서 어느 시대에나 항상 우리를 사로잡았다. 성상이든 우상이든, 예술이든 영상이든, 어떤 자격으로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그 힘을 유용하면서 인간관계와 사회 집단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시대와 문명마다 모두 달랐다. 결국 이미지를 사회적으로 통용시키는 주체들의 신학과 정치학과 미학이 있다. 물질적 바탕을 근거로 관념을 소통시키는 이미지는 그 소통력으로써 도덕과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허상이지만 실상보다 더한 위력을 보이기도 한다.
■ ‘이미지의 발전’이라는 미술사의 신화 해체
저자는 흔히 이미지의 일정한 진화로 보기 쉬운 ‘미술사’를 부인한다. 시간과 거리, 역사와 지리의 경계를 뛰어넘어 보편적 인류사와 별개로 미술의 역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관례를 부인한다. 그것은 선별된 신화일 뿐이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고 믿으며, 숭배하고 싶어하는 이미지 신화의 역사일 뿐이다. 그는 이와 같은 신화가 어떤 사회에서 물적 토대를 통해 공고하게 자리 잡는 모습을 추적했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임의로 이미지 상징을 만들고 또 그것을 어떻게 필연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했다. 물론 그 중심에 기독교의 교리가 있다. 그런데 저자는 기독교 교리의 신비론적 구조를 이미지로써 전달하고 소통하는 매개론적 방법으로 해부하려 했다. 따라서 저자는 기독교의 신화를 폭로하기도 했지만 바로 그 오래된 교회박사들의 사상과 창안에서 이미지 문명의 수수께끼를 밝힐 계기를 찾았다고도 할 수 있다.
■ 종교적 수사학을 꿰뚫는 비신학적 방법론
요컨대 저자는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으며, 또 어떤 면에서는 봐서도 안 될 것으로 간주되는 절대적 존재를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상정하고 또 그것을 통해 믿음을 끌어낸 기묘한 종교적 수사학을 비신학적 방법으로 꿰뚫어보려 했다. 그러면서 사진, 영화, 텔레비전 영상이 이런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차단하는지 알아보려 했다. 결국 디지털 기술로 가속화하면서 세계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오늘날 영상 문화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밝혀보려 했다.
이런 논지에서 저자는 서구인이 “그리스도 대신 할리우드를 택했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비기독교는 오늘 무엇을 택하고 있을까? 부처나 미륵불, 단군이나 신주 대감 대신 ‘한류우드’ 같은 것을 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