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1848년 프랑스에서 2월혁명이 발발하기 한 달 전 의회에서, 지배층이 스스로 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민중의 분노가 조만간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닥쳐오는 혁명의 노도를 예견한 고고한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정치적 불평등과 빈부의 양극화에 따른 심각한 사회 불안이 결국은 프랑스혁명을 또 한 차례 몰고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가 바로 알렉시 드 토크빌이다.
토크빌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구성원은 평등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지닌다. 약자를 강자의 대오로 이끌어 주는 ‘평등을 위한 씩씩하고 정당한 열정’과, 약자로 하여금 강자를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게 하는 ‘평등을 위한 타락한 취향’이 그것이다. 토크빌은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 민주 사회의 추세를 고찰하는데, 불행하게도 둘째 속성이 첫째 속성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욱 깊이 습성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평등을 위한 타락한 취향’에서 비롯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는 국민으로 하여금 안락을 위해 기꺼이 자유를 내주게 함으로써 정치권력의 비대화를 가져오는 한편, 공공 정신을 좀먹고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한다. 국민이 자신의 이해득실에 유리한 인물을 지도자로 뽑으려 함에 따라서, 정치는 당파적 이해의 각축장이 되고 정치가의 자질은 저하된다.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에 편승해서 누구나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나설 때,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가 출현하리라는 것이 토크빌의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해악과 폐단을 근절할 수 있는 치유책을 ‘정치적 자유’의 복원에서 찾는다. 정치적 자유만이 공동체의 성원을 개인적 무기력과 정치적 무관심에서 구출해 미덕과 책임으로 충만한 공공의 세계로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쓴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에 따르면, 프랑스혁명은 절대 왕정과 봉건 귀족에 맞서서 자유의 원리를 내세움으로써 국민에게 민주주의 의식을 고취하고 주권자로서 외양을 부여했는데, 이러한 정치권력의 평등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평등화를 동반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은 평등에 대한 인민의 지나친 욕구와 정열로 말미암아 오히려 자유를 확립하는 데는 실패했다. 혁명 초기에 타도되어 자취를 감춘 듯 보였던 낡은 권위의 원리들이 되살아나서 급기야 나폴레옹의 군사독재를 불러들였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 책은 앙시앵 레짐의 상태와 혁명의 전개를 설명하는 단순한 연대기적 개설서를 뛰어넘는다. 토크빌은 파리와 지방의 문서보관소를 드나들면서 당시의 저술·공문서·회의록·진정서 등을 낱낱이 들춰 보았으며, 앙시앵 레짐의 정치 구조를 비교·연구하기 위해 직접 독일로 답사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등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4년을 바쳤다. 따라서 기존 저술에서 볼 수 없었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한편, 과거를 보는 역사가의 식견과 현실을 고민하는 사상가의 안목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지나간 역사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해 주는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