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위기, 월가 봉기 1주년, 갈무리 출판사의 네 번째 기획 도서
『크랙 캐피털리즘』은 도서출판 갈무리가 2012년 하반기에 기획한 시리즈의 네 번째 도서로 출간된 책이다.
역사 속에서 점차 사라진 ‘삼림헌장’을 통해 경제적 민주주의의 핵심인 공통권을 복원하는 라인보우의 『마그나카르타 선언』(8월),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행동방향을 제시하는 네그리와 하트의 『선언』(9월 17일 월가 1주년 출간), 유럽의 재정금융 위기를 분석하여 금융독재에 대한 대항행동을 제안하는 베라르디[비포]의 『봉기』(12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중들의 창조적인 거부들이 자본주의를 균열(크랙)내며 새로운 혁명을 건설한다고 주장하는 홀러웨이의 『크랙 캐피털리즘』(2013년 1월)이 출간되었다.
이 4권의 도서들의 내용은 상호 보완하며, 신자유주의 위기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게 사유하게 한다. 이 책들은 위기와 봉기의 시기에 필요한 역사적 · 철학적 · 사회운동적 통찰을 우리 시대에 제시하고 있다.
유럽과 남미 자율운동의 핵심 사상가 존 홀러웨이의 최신작
존 홀러웨이는 워너 본펠드, 쎄르지오 띠쉴러 등과 함께 “열린 맑스주의” 조류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안또니오 네그리 등 저명한 현대 정치철학자들과 비견되는 국제적 사상가이다. 홀러웨이의 사유는 최근 들어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와 공명하는 지점이 넓어지면서 광범한 의미의 “자율주의” 사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책 『크랙 캐피털리즘』의 부록에는 2012년 3월~12월 온라인 지면을 통해 전개된 마이클 하트와 존 홀러웨이의 서한논쟁이 수록되었다. 이 서한논쟁을 통해 독자들은 홀러웨이의 이론이 현대 정치철학의 지형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다 넓은 시야에서 조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홀러웨이는 지난 10년 간 전 지구적 정의운동, 대항지구화 운동, 반자본주의 운동에 이론적 영감을 제공해 온 사상가이다. 특히 지난 2002년에 출간된 홀러웨이의 전작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 조정환 옮김, 갈무리)은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책이다. 이 책은 “권력”, “국가장치의 장악”을 혁명으로 생각해 왔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며 탈근대 시대, 지구화 시대에 가능한 혁명의 방법론은 무엇인지에 관해 전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홀러웨이는 1991년 멕시코로 이주한 이후 사빠띠스따 원주민 운동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유럽, 미주 지역, 특히 남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좌파 지식인으로 부상했다. 『크랙 캐피털리즘』 역시 출간된 지 2년 만에 페루,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에 이미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그는 멕시코 뿌에블라 주에 머물면서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사회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영국의 『가디언』지에 지속적으로 기고하여 유럽의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위기와 멘붕 시대를 넘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선 이후 사람들 사이에는 정치적 패배감과 냉소주의가 확산되었다. 언론, 방송, SNS를 불문하고 사용되는 “멘붕”이라는 용어의 유행이 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대의제도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심리적 징후이며, 한국의 정치지형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내부의 미국식 양당간 경쟁으로 협소화하는 정치적 보수주의로 귀결”될지 모른다. 저자는 자기결정력에 기초한 균열들의 형성과 그 합류만이 세상을 바꿀 힘임을 단언함으로써 대의제도에 지친 우리가 다른-행위에 대해 사유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다른 행위란 자본주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우리의 일상적 움직임들이다.
균열의 방법은 자본의 논리로부터 벗어나 ‘행위’를 하는 것이다. 16세기의 프랑스 이론가이자 『자발적 복종』의 저자 에띠엔느 드 라 보에띠를 인용하면서 홀러웨이는 자본주의를 만들기를 중지하고 이윤추구 논리를 위해 봉사하기를 지금당장 멈추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멈추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자본주의를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에 대한 절대적 긍정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창조하는 순간들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홀러웨이가 말하는 균열은 광장 점거나 은행을 불태우는 등의 특수한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노래 부르고 싶기 때문에 합창단을 꾸리는 친구들, 환자를 돌보려고 실제로 애쓰는 간호사, 텃밭에서 가능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장노동자 등” 자본주의에 속박된 ‘노동’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져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모든 순간이 ‘균열의 순간들’이다. 이러한 균열들이 증식되고, 네트워킹되고, 균열을 봉합하려는 자본주의의 압력에 맞서 함께 투쟁할 때 자본주의는 우리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조각조각 해체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균열시키고 있다.
균열의 순간들은 늘 우리와 가까이 있다. 홀러웨이에 의하면 우리가 자본주의를 유지시키기 위해 하는 ‘노동’은 균열들로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균열의 방법론이란 갈등적인 상태로 잠복해 있는 ‘행위’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홀러웨이는 이러한 주장을 하기 위해 칼 맑스의 ‘노동의 이중성’에 대한 분석을 부각시킨다. 맑스는 노동 속에 자본의 논리에 귀속된 ‘추상노동’과 창조적이고 목적의식적인 행위(맑스의 용어로 ‘구체노동’ 혹은 ‘유용노동’) 사이의 갈등이 있음을 분석했다.
교사들은 “잘 가르치는 것과 등급매기기 혹은 필요한 대학원생의 수를 확보하기”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목수들은 “좋은 테이블을 만들기와 팔릴 상품을 생산하기” 사이에서 늘 긴장하며 살아간다. 콜센터 노동자는 “전화로 누군가와 다정한 담소를 나눌 가능성과 직업기율” 사이에서 요동한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자본은 우리들에게 매순간 이러한 긴장 속에서 선택을 하도록 강요한다. 존엄을 포기할 것이냐, 내 마음속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냐. 이를 홀러웨이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러한 긴장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활동을 추상노동의 요구에 종속시키는 것을 거부하도록, 그것을 돈의 요구에서 해방시킬 방법을 찾도록 이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모든 순간의 긴장들을 홀러웨이는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것을 추상과 구체의 긴장으로, 자본주의 논리와 공통화 논리 간의 갈등으로 이론화한다. 결국 『크랙 캐피털리즘』에서는 우리 삶 전체가 자본주의를 깨트릴 균열이 우글대는 우범지대로 새롭게 조망된다.
『크랙 캐피털리즘』 속 균열과 행위에 대한 통찰들!
우리가 이미 행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자본주의를 균열시키고 있다.……우리는 반란의 공간들과 순간들을 만들어 내면서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을 다른 형식들을, 새로운 세계의 가능한 기초들을 창출하고 있다.……그것들 모두는 실험이다. 모든 것은 물으면서 걷기이다. 앞으로 나아갈 다른 길은 없다.
― 「한국어판에 붙이는 서문」
균열은 지금여기에서의 불복종이지 미래를 위한 기투가 아니다. 그것은 ‘혁명 이후에 우리의 삶은 자본에 종속되지 않을 것이야’가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활동을 자본의 지배에 종속시키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뭔가 다른 것을 할 수 있고 또 할 것이고 또 하고 있다’이다.
― 「5. 균열은, 우리가 다른 유형의 행위를 천명하는, 어떤 공간 혹은 순간의 아주 일상적인 창출이다.」
우리는 도로의 균열들이며, 도로를 뚫고 올라오는 잡초들이다. 차가운 세계에서 우리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균열들을 창출하면서, 얼음을 비추는 태양이다. 안 그런가?
― 「10. 균열들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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