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 머문 날들

W. G. 제발트 · 인문학/에세이
2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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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하늘에 혜성이 떠 있네 라인 지방 가정의 벗의 명예를 기리기 위한 달력 기고문 이 호수가 바다였다면 생피에르섬을 방문하고 무엇이 슬픈지 나도 모른다 뫼리케를 위한 소박한 추모 죽음은 다가오고 시간은 지나간다 고트프리트 켈러에 대한 주석 고독한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를 기억하며 낮과 밤처럼 얀 페터 트리프의 그림에 관하여 옮긴이의 말 | 전원과 우울에 갇힌 작가의 초상 W. G. 제발트 연보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거장 제발트가 그의 ‘귀한 작가’들에게 바치는 슬프고 아름다운 헌사 독일문학의 거장 W. G. 제발트의 에세이 『전원에 머문 날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그간 이어져온 ‘인문서가에 꽂힌 작가들’ 시리즈에 포함된 제발트 선집 중 『공중전과 문학』『자연을 따라. 기초시』『캄포 산토』에 이은 네번째 권이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소설 『현기증. 감정들』까지 포함하면 총 다섯번째 책이다. 그간 제발트는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며 한국에서도 ‘제발디언’이라 불리는 열혈독자들을 무수히 양산해왔다. “오늘날에도 위대한 문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작가”라는 수전 손택의 찬사와 함께 미국과 영국에서 먼저 주목받은 그는,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중 2001년 12월 14일 영국 노리치 인근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뉴욕 타임스 북리뷰는 이 년 뒤 출간된 그의 유고집 『캄포 산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제발트의 이름을 카프카, 보르헤스, 프루스트와 나란한 위치에 두었다. 이제 엄연한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이 책은 꽤 독특하다 할 만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비평에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제발트 특유의 글쓰기가 잘 드러난 하나의 또하나의 작품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글쓰기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작가들에 대해 흠모와 연민을 담아 조명한 제발트의 비평적 산문 『전원에 머문 날들』은 요한 페터 헤벨, 고트프리트 켈러, 로베르트 발저, 장자크 루소, 에두아르트 뫼리케, 얀 페터 트리프, 총 여섯 작가에 대해 다룬다. 제발트의 다른 비평집인 『불행에 관한 기술』『섬뜩한 고향』이 특정 주제 아래 다양한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들에 대한 밀도 높은 비평적 탐구를 시도했다면, 이 책에서는 그 관심을 스위스와 독일 서남부 알레만 지역 출신 작가들에게 쏟는다. 그리고 이들은 제발트가 생전에 가장 귀하게 생각했던 작가들이다. 이 책은 제발트의 문학연구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도 꾸준히 비평작업을 지속해왔는데, 늘 곁에 두고 읽어왔던 요한 페터 헤벨, 고트프리트 켈러, 로베르트 발저에 한결같은 애정을 표하며 “어쩌면 너무 늦어지기 전에” 이들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에 담긴 원고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계기로 쓰게 된 장자크 루소와 에두아르트 뫼리케에 대한 글들이 더해지자, 이 원고들이 서로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맨 마지막에 화가 얀 페터 트리프에 대한 에세이가 실린 것도 그 나름의 질서에 따른 결과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화가에 대한 글이 실린 것은 단순히 그가 얀 페터 트리프와 친구 사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발트는 “아주 깊숙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 예술은 수공예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 사물들을 하나씩 헤아리는 일에는 감수해야 할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 바로 트리프의 작품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트리프 역시 켈러와 발저의 작품을 귀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작가들은 모두 시대와 불화하고 우울로 고통받았으나 글쓰기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이들이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본국에서나 세계문학사에서 중심이 아닌 변방에 위치해 있다. 제발트가 부러 모아놓은 그 이름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비껴나 있고 그늘진 인상을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켈러와 발저, 헤벨은 독일문학사에서는 변방에 해당할 스위스 태생이고, 루소 역시 스위스 제네바 출신이다. 헤벨과 뫼리케는 알레만 지역, 즉 스위스 및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 서남부 지역에서 평생을 살았기에 특정한 지역색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들이 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지향성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사실 제발트 덕분에 이러한 평가조차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전원에 머문 날들』의 특별한 점이 생겨난다. ‘전원’은 소란스러운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픈 소망, 급변하는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느림과 정체 속에 머무르고자 하는 소망의 시공간이다.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각각의 이유로 전원을 삶의 토대로 삼고자 했다. 그들에게 전원은 정신적 고통을 피할 안식처였다. 물론 그러한 도피처를 찾는 인간의 실존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전원은 본질적으로 우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황폐해진 심신을 달래기 위해 찾는 세계가 전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우울은 제발트가 거듭 강조하듯이 글쓰기라는 악덕을 필연적으로 끌어들이는 불치의 병과 같은 것이다. “언제나 내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문인들의 끔찍스러운 끈기다. 글쓰기라는 악덕은 너무나 고약해서 어떤 약도 듣지 않는다.” 제발트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자신이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동료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난외주석”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비평적 성격의 글이라는 것을 스스로 분명히 밝힌 셈이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펼쳐 읽다보면, 독자들은 전혀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학술적인 글쓰기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다소 주관적이고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번역자인 이경진 교수에 의하면, 제발트는 이 책에서 다루는 작가들을 향한 흠모와 연민의 마음을 숨기지 않으며, 그들과 관련된 자신의 개인사를 끄집어내고 그들과의 사적 인연을 어떻게든 에세이의 중요한 주제로 격상시키려 한다. 이 같은 서술 태도는 제발트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을 다루면서 결국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당연한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에세이적인 소설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러한 이야기 방식이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전원에 머문 날들』은 이미 한 권의 시집과 세 권의 소설에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로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한 작가의 또다른 실험적 ‘작품’으로 읽어볼 수 있다. 이 책은 앞서 발간한 두 비평서와 달리 학술적 글쓰기의 징표인 주석을 깨끗이 추방해버렸으며, 특정 작가의 문학세계를 체계적으로 해설하려는 노력에는 통 관심이 없다는 듯이 작가와 관련된 온갖 여담과 사담으로 즐겨 빠져든다. 그리고 제발트의 소설작품들이 그렇듯 다수의 이미지가 텍스트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하고 있다. 마지막에 실린 얀 페터 트리프에 대한 에세이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제발트는 이 책이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듯이, 일종의 ‘작가초상’으로서 쓰였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트리프의 작업방식과 이에 대한 제발트의 비평은 이 책을 쓰는 방식에 대한 메타적 설명이자 논평으로 읽힌다. 이런 점에서 『전원에 머문 날들』은 제발트의 중요한 시학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제발트는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긴 작가들을 소환하여 스스로 글쓰기라는 작업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로베르트 발저가 그러했듯 “문학을 완전히 등졌음에도” 여전히 조끼 호주머니 속에 몽당연필과 메모지를 넣어가지고 다니며 이런저런 것들을 자주 적어넣는, 그러면서도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느끼면 마치 “나쁜 짓이나 심지어 부끄러운 짓”을 하려다 들킨 사람처럼 메모장을 감추는,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환희에 찬 고고한 삶들에 관한 기록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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