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여성의 역사, 여성의 삶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기록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른 역사책처럼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여성의 삶이 바뀐 순간들을 빠짐없이 다룰 수 있을까? 『여자만의 책장』을 쓴 데버라 펠더는 그럴 수 없다고, 더 정확히 말하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시대에서든, 여성의 역사는 문학과 논픽션을 아울러 글이라는 맥락을 거쳐야만 파악할 수 있는 고유의 특성이 있다.” 본격적인 여성운동과 정치적·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여성들은 글로써 여성의 삶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왔고, 당대와 과거 여성들의 삶을 책에 담아 여성의 삶이 바뀌어온 궤적을 기록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외쳤다. 여성의 삶을 이야기로, 기록으로, 연대로, 역사로 만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여자만의 책장』은 그래서 50권의 책으로 쓴 여성의 역사이자 여성이 글쓰기로 무엇을 이루어왔는지에 대한 평전이다. 여성(의 역사)을 하나의 책이라고 한다면, 그 책 안에 무수히 많은 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힘을 북돋고, (여성이라는) 책 안의 책장을 한 권 한 권 채워가는 과정을 몇백 년 동안 반복해서, 마침내 책장을 꽉 채우는 데까지 나아간 결과물이 바로 『여자만의 책장』이다. ‘우리만의 책장’(A Bookshelf of Our Own)이라는 원제는 의미심장하다. 지금으로부터 95년 전,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 혼자서는 도서관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세상에서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76년 뒤, 데버라 펠더는 이제 우리, 즉 여자만의 책장이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어느새 여성이 글쓰기로 여성의 세계를 책으로 구현하기 시작했고, 도서관과 집집마다의 책장에는 여성 작가들의 책이 하나씩 쌓여 여성의 삶을 여성 스스로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첫 번째 물결’ 이전에도 전 세계에서 여성이 쓴 이야기(『겐지 이야기』)와 주장(『여성들의 도시』, 『여권의 옹호』)이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후대의 여성 작가들에게 자신의 삶을 바꿀 의지를 불어넣었으며, 아직 여성의 이름이 책 표제지에 작가 이름으로 인쇄되는 것을 꺼리던 시기부터 여성 작가들의 베스트셀러가 더 나은 여성의 삶을 상상하도록 만들었다(『제인 에어』, 『미들마치』). 소설이라는 형식을 넘어 에세이(『자기만의 방』), 일기(『안네의 일기』), 인문학(『제2의 성』), 역사학(『투쟁의 세기』), 사회학(『여성성의 신화』, 『백래시』), 문집(『그래 난 못된 여자다』) 등을 통해 여성들의 삶을 직접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기존 형식이 자기 삶을 담아낼 그릇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여성들은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거나 기존 형식을 자신의 이야기에 맞춰 바꾸기도 했다(『여전사』, 『영혼의 집』). 또한 잊혔던 여성의 작품을 발굴하고(『각성』,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잊힐 뻔한 여성 작가를 다시금 집필하도록 이끌면서 과거의 여성 작가가 간과했던 또 다른 여성을 조명하기도 했다(『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또한, 과거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현대 작품이 어떻게 현재의 새로운 문제들을 다루는지도 보여준다(『브리짓 존스의 일기』). 그렇게 1002년의 이야기부터 2002년의 이야기까지 다루는 『여자만의 책장』의 한국어판은, 여기서 소개하는 50권(에 추가해서 ‘더 읽어볼 만한 작품’ 50권)의 책 중에 한국어로 소개된 41권(과 28권, 총 69권)의 책 표지와 서지 사항을 정리해 수록했다. 여러 판본이 나온 고전들은 읽기 쉽고 설명이 충실해 책을 처음 읽는 독자가 작품을 더 잘 접할 수 있을 법한 판본을 선정해 소개했다. 특히 최근 5년간 출간된 책 16권이 포함돼 있어, 작품을 처음 읽어보려는 사람은 물론 다시 한번 책을 읽어보려는 독자에게도 새롭고 더 읽기 쉬우며 더 정확한 번역을 골라 ‘여성을 위한 새로운 세계문학 큐레이션’을 선보인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 『여자만의 책장』 안의 책을 더 많은 여성과 남성이 더 수월하게 가까이하고 자기만의 책장 안에 꽂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서구 바깥의 책들, 특히 한국과 동아시아 문학의 계보와 담론에 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의 해제를 실어 책의 시야를 조금 더 넓히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