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이렇게 쓰려면 어떻게 기록해야 했을지.” 르포문학의 고전 중의 고전 존 리드가 기록한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헌사 “이 혁명은 말입니다. 잊지 마세요. 이 혁명은 부자들에 맞선 빈자들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서 싸워. 정의를 위해서도 싸우지.” 존 리드, 진실을 쓰는 기자 존 리드. 1917년 현장에서 러시아혁명을 목도하고 쓴 《세계를 뒤흔든 열흘》로 불멸의 이름을 남긴 기자다. 이 작품은 러시아혁명에 대한 가장 훌륭한 르포르타주로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가 멕시코혁명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 최초로 완역해 출간한 《반란의 멕시코》는 르포 기자로서 존 리드의 출발을 알리는 뛰어난 작품이다. 존 리드가 1913년에 이 기록을 남겼으니 정확히 110년 만에 한국에 출간되는 셈이다. 존 리드는 1913년 12월 뉴욕 잡지 《메트로폴리탄》의 특파원 신분으로 멕시코로 향한다. 당시 멕시코는 혁명의 열기로 불타 있었다. 그는 3개월을 넘는 기간 동안 멕시코 북부의 사막, 산악, 평원 지대를 누볐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자꾸만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취재하겠다고 자청했다(“넌 진짜 운 좋은 거야. 진짜 전투를 보게 됐잖아. 이제 굉장한 기사를 쓸 수 있게 됐어.” “이건 굉장한 경험이야. 뭔가 쓸 게 생겼어.”). 그는 전투 현장만을 기록하려고 간 게 아니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땅을 잃은 농부, 한 끼 먹을 음식을 늘 걱정하는 가난한 민중들의 삶이었다. 그는 내내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삶의 움직임들로 넘쳐난다. 멕시코 민중들의 따뜻한 동지애, 유머, 낙천적인 모습들, 혁명에 대한 생각, 춤과 노래, 무모한 대담성, 여성의 현실 등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멕시코 땅에 대한 묘사는 가히 백미라 할 만하다. 즉 존 리드에게 《반란의 멕시코》는 ‘멕시코와 멕시코 민중에게 바치는 헌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를 멕시코로 보냈던 《메트로폴리탄》의 에디터 칼 호비는 “이보다 더 좋은 글은 없을 것이다”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이렇게 쓰려면 어떻게 기록해야 했을지. 르포의 기본은 대단한 통찰력과 문장력이 아니다. 성실하고 꼼꼼한 기록이다. 취재하는 동안 어느 한순간도, 어느 한마디도, 사소한 대화나 행동도,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의 변화도, 상황이 펼쳐지는 장소와 풍경도, 보고 듣고 감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을 멈추지 않는 것. 탁월한 르포는 그 사소하고 지난한 기록들이 쌓인 뒤에야 촘촘한 그물로 엮일 수 있다. 수첩과 펜을 손에서 떼지 않는 일. 그 단순한 기본이 르포문학의 고전을 쓸 수 있었던 그의 진짜 실력이라고 나는 믿는다.”(이문영, <추천의 글> 중에서) “다들 무엇을 위해 싸웁니까?” “다들 무엇을 위해 싸웁니까?” 존 리드가 혁명군 병사들을 만날 때마다 묻는 말이다. 멕시코 병사들은 진지하게 말하기도 하고 농담조로 받아치기도 한다. “이 혁명은 말입니다. 잊지 마세요. 이 혁명은 부자들에 맞선 빈자들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서 싸워.” “왜냐. 싸우는 게 좋아서지. 광산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싸우는 게 일하는 것만큼 힘들지 않아서 싸웁니다.” “저이가 싸우니까요.” 역으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자네는 우리랑 같이 싸울 건가?” 존 리드는 “아니. 나는 기자야. 기자는 싸우지 못하게 돼 있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실존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혁명의 현장에 와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들과 함께 싸울 것인가?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질문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들이 왜 싸우는지 알기 때문이고, 자신이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알기 때문이다. 배우지 못한 멕시코 민중보다 우월한 지식인이자 기자,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드러날 법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걸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싸우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 하나하나를 소중히 기록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혁명 지도자도 아니고, 혁명 그 자체도 아닌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과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우정을 쌓아나간다. “나는 이 순수한 이들을 향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306쪽) 존 리드는 멕시코혁명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했다고 썼다. 그리고 이 《반란의 멕시코》를 통해 급진적인 언론인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그는 1914년 러들로 학살 현장인 미국 콜로라도주로 향한다. 러들로 학살은 존 데이비슨 록펠러 소유의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과 그 가족들이 파업을 벌이자 콜로라도주 방위군과 회사에 고용된 민병대가 수십 명의 광부와 그 가족들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존 리드는 이 사건을 취재해 <콜로라도 전쟁>이란 글을 남겼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을 취재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했고, 이 전쟁은 “상인들의 전쟁”일 뿐이지 “우리들의 전쟁은 아니다”라고 썼다. 1917년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았을 때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 있었고, 그 현장을 목격하고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란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 이렇게 세계사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는 늘 현장에 있었고, 민중의 시선으로 평화의 시선으로 이 사건들을 바라보고 글을 썼다. “존 리드. 짧은 생애를 뜨겁게 살았다. 특정 매체와 좁은 출입처에 묶이지 않고 세계사적 현장을 옮겨 다니며 보고, 쓰고, 참여했다. 총알 날아다니는 사막과 세계대전의 전쟁터, 노동자들의 전쟁 같은 파업과 이념의 지형도를 바꾼 혁명 등 그의 출입처는 전 세계였고 그의 소속 매체는 그 자신이었다. 그의 기록하는 자세와 추구했던 저널리즘과 꿈꿨던 세상은 가난하고, 권력과 거리가 멀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이문영, <추천의 글> 중에서) 존 리드는 1920년 모스크바에서 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 33세의 젊은 나이였다. 1981년 워렌 비티는 존 리드의 일생을 담은 영화 <레즈>를 만들었다. 멕시코혁명의 중요성 《반란의 멕시코》가 담고 있는 멕시코혁명은 당시에는 그 세계사적인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사건이었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이 갖는 세계적 영향력이 강력한 나머지 그보다 앞선 1910년의 멕시코혁명의 중요성이 가려졌다. 하지만 멕시코혁명은 ‘제3세계 농업 국가에서 발생한 최초의 사회혁명’이었다. 이 혁명은 20세기 내내 식민지는 물론이고, 독립국이지만 제국주의 열강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신식민지’ 곳곳에서 발생하게 될 사회적 격동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다. 1910년부터 무려 10여 년 동안 진행된 멕시코혁명의 파란만장은 크게 4막으로 나뉜다. 1막에서 독재체제에 맞선 민중봉기로 민주정부가 수립되지만, 2막에선 민주정부에 맞선 쿠데타가 발생해 대통령이 살해된다. 3막에선 쿠데타 세력과 민중 지도자들이 결전을 치르고 마침내 혁명은 승리로 귀결된다. 하지만 4막에서는 혁명 세력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민중 지도자들이 비운의 최후를 맞는다. 짜임새가 탁월한 한 편의 고전 희비극과도 같은 멕시코혁명의 드라마는 20세기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혁명의 예고편처럼 보인다. 멕시코혁명이 발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33년간 전횡을 일삼던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약속 파기였다. 독재자 디아스는 “이제 멕시코 민중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해놓고도,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자 그를 구속해버렸다. 이에 마데로는 탈옥을 감행했고, 민중봉기로 독재를 타도하자고 호소했다. 마데로의 호소에 화답한 이들 중에는 북부 산악의 산적 판초 비야, 남부 평원의 농민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있었다. 제1막은 무장투쟁이 승리해 늙은 독재자 포르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