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모르는 단어 같았다”
평등한 밤 같은 건 오지 않는 불가능의 세계 속에서
노래가 되지 못한 채 울리는 허밍들
김유정작가상 수상작 「오후만 있던 일요일」
이효석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아무도」 수록!
평단과 독자, 모두가 기다려온 위수정의 두번째 소설집
소설이란 언제나 당대의 윤리나 규범, 도덕을 벗어난 자리에서, 오히려 그것들을 의심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 그러므로 인간과 세계에 대해 좀더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 저는 누군가를 위로해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 적은 없어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어떤 상황이나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인터뷰 「위수정 X 이소」(『소설 보다: 봄 2022』)에서
“견고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적인 불안과 충동에 항상적으로 노출된” ‘은의 세계’를 “차갑고 섬세”(김형중 해설)한 문체로 그려내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 위수정의 두번째 소설집 『우리에게 없는 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이후 2년 만에 찾아온 이번 책에는 2022년 제23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아무도」를 시작으로 같은 해 제2회 김유정작가상 수상작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포함하여 총 열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무덤이 조금씩」이 당선된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첫 소설집에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렸던 것과 비교해볼 때, 다시 2년 만에 출간하는 두번째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작품은 첫 소설집 이후 작품에 대해 한층 커진 기대와 관심으로 작가가 더욱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앞서 밝힌 바와 같이 2022년에 연이어 문학상을 수상한 「아무도」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각각 수상 소식을 전하기에 한 계절 앞서서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에도 선정되어 2022년 봄과 가을, 한 해에 두 번이나 작가의 이름을 <소설 보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위수정의 소설은 인물이 처한 상황, 내면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독자를 작품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나와는 동떨어진 배경 속에,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소설 속 인물의 삶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고스란히 감각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작품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가의 집요한 응시가 향하고 있는 곳에서 독자를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그로 인한 고통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의 특징으로 종종 중산층 이상의 계급성을 이야기할 때 “그들이 가진 속물성, 그들이 학습한 교양이 내면의 욕구나 본능과 충돌하는 지점들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밝히며, “돈이나 교양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 삶에는 분명히 있고 그러한 정말과 좌절의 경험이 동일하게, 그러나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한다(인터뷰 「위수정 X 선우은실」, 『소설 보다: 가을 2022』). 결국 위수정의 작품 속 인물들의 경험은 읽는 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중산층 이상의 계급’, 다시 말해 “맘먹으면 별다른 준비나 계획 없이 한적하고 철 지난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 물에 몸을 담근 후 자연산 재료로 만든 해물탕 정도는 먹다 남길 수 있는 수준의 부”를 “필수적인 ‘토대’”(김형중 해설)로 삼는 위수정의 ‘은의 세계’는 이번 책에 수록된 열 편의 소설에서 더욱 확장되어 금의 세계, 혹은 그 반대의 흙의 세계까지 뻗어 나간다.
“그곳에는 지금 눈이 내리니?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드는 눈이?
그러나 여기에 그런 눈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저 얼음처럼 차가운 취향의 장벽 앞에 드러난 폐허의 자리
‘취향’은 고작 이별의 이유나, 존중하면 그만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강력한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계급을 형성하고 재생산하는 일이 취향의 몫이다. 아마도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라면 계급이란 취향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고집스레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댁들 취향이고) 작가 위수정에게 취향은 그와 다르다. 위수정에 따를 때 취향은 넘어설 수 없는 계급 간 경계를 확정하고 유지시킨다.
―김형중, 해설 「눈만 내리면 평등한 밤이」(p. 365)에서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위수정의 소설에 따르면 금, 은, 흙 세계의 경계를 획정하고 유지시키는 것은 ‘취향’이라고 설파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무도」의 희진과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원희, 「제인의 허밍」의 규희와 「우리에게 없는 밤」의 라이온퀸 그리고 「몬스테라 키우기」의 민희에서 보듯, 적극적으로 취향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미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며 다른 이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여유가 몸에 배어 있는 금의 세계 사람들은 오히려 다른 세계를 욕망하기까지 하지만 결코 자신이 가진 것을 과감히 버리지는 못한다. 한편 「제인의 허밍」의 한나와 같은 은의 세계 사람들은 끝없는 모방으로 금의 세계에 다가가려 하지만 거대한 취향의 장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궁핍한 삶을 살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 과제인 흙의 세계 사람들에겐, 비슷한 취향을 가졌으나 결국은 돈 문제로 헤어지고 마는 「플루토, 너의 검은 고양이」 속 동거인들처럼 취향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거나, 「우리에게 없는 밤」의 지수와「집」의 화자처럼 자신의 폐허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는 것일 뿐이다. 이제 각각의 작품 속에서, 작가가 깊이 들여다보고 묘사하는 이 세계 속의 인물들을 만나보자.
「아무도」
그런 식으로 내가 점점 더 외롭고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그대로 두었다. 이러려고 집을 나온 거니까. (p. 14)
희진은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고 남편 수형을 떠나 혼자의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남자와 함께하는 삶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유부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그를 향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그로 인해 더욱 고통스러운 스스로를 방치하는 희진의 곁에는 이 모든 것을 알고도 한결같이 다정하고 따뜻한 부모님과 남편이 있다. 한편 희진의 욕망을 욕하는 사람, 반대로 그 꿈처럼 모호한 현실을 유지하길 바라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기에, 희진은 결국 자신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임을 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원희는 불협화음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기승전결이 있는 고전적인 곡들을 선호했다. 그런데 고주완의 공연 이후로 달라졌다. 원희는 이렇게 단번에 취향이 다른 쪽으로 열리는 경험을 해본 기억이 없었다. (p. 59)
여유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육십대의 원희는 친구 수임의 권유로 젊은 피아니스트 고주완의 연주회에 갔다가 그에게 빠진다. 오랜 시간 잊고 지낸 감각이 살아나면서 원희는 처음 경험하는 온라인 팬 카페 활동에 활력을 느끼기도 하고, 지금껏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진 곡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러한 즐거움도 잠시, 고주완의 공연 후 젊은 여성에게 경멸 어린 말을 듣게 된 원희는 셋째를 임신 중인 딸과 치매를 앓고 있는 시모를 둔 자신의 현실을 자각한다. 매혹적인 불협화음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욕망과 현실 사이의 슬픈 간극은 원희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어쩐지 원희의 미래는 고급 실버타운에 있는 듯 보인다.
「제인의 허밍」
한나는 잠시 후면 제인이 된다.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입만 보면 사람들은 한나가 미소 짓는 줄 알 것이다. 얼굴을 상상하겠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눈동자와 콧대와 이마와…… (p. 90)
한나는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하는 방송인 ‘제인의 허밍’을 운영하는,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