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독립하고 싶다. 간섭받기 싫으니까. 그러려면 취직해서 돈을 벌고 새로운 집을 꾸리고, 직장에서는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고…… 독립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수많은 연결망이 개체를 지탱한다면, 독립은 그저 홀로서기가 아니라 관계를 어떻게 배열할지의 문제가 아닐까? 경쟁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을 함께 찾는 한편의 인문학. 독립이 필수인 시대 완벽한 모양의 홀로서기 대신 위태로운 독립의 길을 따라가기 모두가 어느 시점에 독립을 요구받는다. 주거 독립, 경제적 독립,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온전한 홀로서기는 타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힘을 주지만, 이를 위한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자기 영역이 있는 전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가동시키는 기획자’는 언제나 새로운 콘텐츠를 내보이며 자기 브랜드를 구축해야 하는 콘텐츠 산업 종사자들이 요구받는 독립의 모양이다. 이들뿐 아니라 거의 모든 현대인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링크드인 등 각종 플랫폼에서 자기 연출을 하며 각자의 매력과 능력을 드러내기를 기대받는다. 모두가 독립해야 하고, 웬만하면 잘해야 한다. 홀로서기에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은 나의 몫이다. 이런 세상에서 잘 독립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독립’의 가이드를 찾는 마음으로 꾸린 《한편》 15호는 지난 ‘쉼’ 호에 이어 다양한 형식의 글이 실렸다. “길을 찾는다는 것은 길을 잘 아는 가이드를 찾는 것”(이양구)이다. 여덟 명의 가이드들은 희곡, 강의, 대담, 취재 노트를 통해 저마다의 길을 보여 준다. 독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무대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 그 무대를 구성하는 관객으로서 함께 있다가 극장을 나설 때, 우리는 그 전과 달라져 있다. ‘독립’ 호를 여는 극작가 이양구의 희곡 「저마다의 먼 강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만드는 마주침을 보여 준다. 무대에 울려 퍼지는 강과 새의 코러스는 남한과 북한이라는 경계에 균열을 낸다. 이로써 기묘하고 애틋한 공생관계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마주침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인류학 연구자 송재홍의 「래퍼들의 갤럭시」는 옆 사람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대구 래퍼들의 사이퍼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구분을 뛰어넘는 힙합의 순간을 포착한다. 상대의 랩을 듣고 즉각적이고 감각적으로 이어 가는 랩은 실존을 건 자기 이야기라는 점에서 독립적이고, 서로가 있기에 발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존적이다. 나와 너라는 구분에 열중하다 보면 공동의 것을 놓치기 마련이다. 이어지는 두 편은 독립된 개인들의 모임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관계의 빈틈을 각자의 목소리로 언어화한다. 「독립 너머 연립」에서 철학 연구자 김강기명은 스피노자 철학을 바탕으로 연립하는 삶을 주장한다. 현재의 전 지구적 문제는 ‘독립적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맺는’ 식의 근대적 기획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철학자의 개념을 통해 새로운 자유를 얻는 길을 따라가 보자. 이러한 철학은 국경선을 뒤엎는 전장에도 적용된다. 전선기자 정문태의 「국경은 아프다」는 현재 진행 중인 버마의 독립투쟁에 얽힌 수십 개의 집단을 만난 기록이다. 버마인과 소수민족들은 군사정부의 압제에는 함께 맞서지만 독립에 대한 입장 차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35년 동안 현장에 있었던 기자가 말하는 해법은 연립이다. “뿔뿔이 흩어진 소수민족으로는 앞날이 없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깝고도 위험한 친밀한 관계에서 함께 자유롭기 위한 시도들 자기만의 공간은 독립의 첫걸음이자 최종 단계로 여겨진다. 공동체은행 ‘빈고’ 활동가 지음은 주거 독립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독립은 함께 살기다」에서 그는 자기만의 공간을 얻은 뒤 오히려 더 부자유해진다는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함께 살기의 실천을 찬찬히 풀어낸다. 민족사관학교 교사 황소희의「한국인의 시민 수업」이 다루는 두 번째 현장은 학교다. 교육의 목적은 부모와 선생의 울타리를 벗어난 ‘독립적인 시민’을 기르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 교실의 모습은 어떤가?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지 말자’를 좌우명 삼은 학생들은 친구의 곤경 앞에서 빠르게 시야를 좁힌다. 학교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권말의 대담 「일인 가구의 쾌락 독립」은 가장 가깝고 그래서 가장 위험한, 친밀한 관계에서의 의존을 다룬다. 인구의 35.5퍼센트가 일인 가구인 시대, 혼자이기를 택한 이들은 손잡고 입 맞추고 몸 붙이는 쾌락에서 완전히 독립한 걸까? 반려가전숍 유포리아 대표 안진영과 디지털성폭력근절 연구활동가 백가을의 생생한 대화 속에서 나의 외로움과 욕망을 달래고 만족시킬 팁을 얻어 보자.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15호 ‘독립’에 적용된 글꼴은 거친 리듬과 연결감이 돋보이는 와리가리체다. 불안하게 비틀거리는 모습이 독립을 향해 위태롭게 걸어가는 우리와 닮았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중독’, ‘콘텐츠’, ‘외모’, ‘대학’, ‘플랫폼’, ‘우정’, ‘집’, ‘쉼’, ‘독립’에 이어 2025년 1월 ‘유머’를 주제로 계속된다. ■ 필진 소개(게재 순) 이양구 연극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한다. 「당선자 없음」(2022), 「당연한 바깥」(2024) 등 공연 대본을 썼다. 여행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어디로든 떠나려 한다. 송재홍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지방도시에서 래퍼로 살아가기: 대구 래퍼의 라이프스타일 형성과 상호 존중에 관한 민족지적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가족이나 회사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음에도 마음이 맞는 타인들과 함께 새로운 삶의 형태를 생산해 내는 이들에게 관심이 있다. 김강기명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베를린 자유대 철학과에서 「스피노자와 평등의 문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에 이어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존재론과 정치철학의 상호 관계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신적 폭력과 역사의 구원: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 정치신학」, 「유럽의회 선거와 좌파의 대응」 등의 논문을 썼고,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위기의 지구화 시대 청(소)년이 사는 법』을 공저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1990년부터 방콕을 베이스 삼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예멘, 레바논, 코소보, 아쩨, 카슈미르를 비롯한 40여 개 전선을 뛰었고, 국제뉴스 현장을 누비며 아흐마드 샤마수드(아프가니스탄) 같은 해방·혁명 지도자와 압둘라만 와히드 대통령(인도네시아),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최고위급 정치인 50여 명을 인터뷰했다.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현장은 역사다』, 『위험한 프레임』,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 『국경일기』를 썼다. 지음 빈고 활동가. 생물학을 배우러 들어간 대학에서 주로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정보인권단체에서 일하며 생태주의와 평화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2008년 해방촌 주거공동체 빈집의 시작을 함께했고 이후 협동조합 빈가게, 카페 해방촌, 해방촌연구소, 자전거메신저 등을 하며 빈마을을 이루어 함께 살았다.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