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국 만화의 진일보, 김정연이 돌아왔다 데뷔작인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으로 일약 한국 만화, 한국 여성 서사의 도약을 일군 김정연 작가가 새 만화 《이세린 가이드》로 돌아왔다. 그는 두 번째 작품으로 단행본 칸 만화라는 형식, 음식이라는 주제를 골랐다. 이세린 가이드. 왜인지 익숙하게 들리는 이 제목을 무심하게 배반하듯, 책은 감각적인 미식을 탐닉하는 대신 주인공 이세린이 음식을 만들고, 먹는다는 것에 대해 풀어놓은 이야기를 푸짐하게 차려 냈다. 집요한 상상력, 치밀한 스토리 밀도를 한껏 높인 칸 만화의 매력 이세린. 가짜를 만드는 데 일가견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사박물관에 소속된 모형 제작자를 꿈꿨지만, 어쩐지 한국에는 자연사박물관이 들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어쩌다 음식 모형 제작자가 되었지만, 어떤 까다로운 주문도 뚝딱 해치우는 어엿한 프로페셔널 여성 자영업자가 되었다. 주인공 프로필에서부터 진한 농담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 만화에는 작가 특유의 집요한 상상력과 칸 만화의 매력이 어우러져 한층 밀도 높은 재미를 선사한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듯 사실적으로, 매력적으로 묘사된 음식 모형 제작자의 세계를 바탕에 깔고, 음식을 둘러싼 다채로운 이야기에 생생한 상상을 곁들여 그야말로 독특하면서도 있음직한 한 세계를 한 권의 만화 안에 치밀하게 구축했다. 열다섯 가지 메뉴로 푸짐하게 잘 차린 이야기 한 상 먹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은 이세린 어린이 때문에 늘 애꿎게 엄마가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이세린 학생은 급식을 제때 다 먹지 못해 선생님과 급우들 눈치를 본다. 어른이 되어서도 몸에 대한 시선과 평가가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삼시 세끼 열린 잔소리 대잔치, 김장, 제사 같은 가족 이벤트 때마다 벌어지는 갈등들…. 이렇듯 매일 삼시 세끼 평생 먹는 음식은 맛으로만 기억에 남지 않는다. 좋고 나쁜 기억들이 우리에게 쌓이고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바로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세린 또한 음식 모형을 만들면서 그간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겪은 일들, 그때의 감정들을 독백한다. 열다섯 가지 메뉴 하나하나마다 짓궂을 만큼 광활하게 이어지는 이세린의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작가가 왜 음식을 주제로 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음식 모형 만드는 세계를 안내하며 한 가지 메뉴에 얽힌 이야기를 푸짐하게 차려 내면서도 튀김옷과 몸, 미역국과 음식에 얽힌 미신, 매운 음식과 먹방의 세계처럼 각 에피소드마다 다채로운 주제가 가미되어 이야기는 한층 더 풍성해진다. 그렇게 치밀하고 노련하게 연결된 이야기를 하나하나 보다 보면 ‘저도요! 저도 그랬어요!’ 하고 손을 들고 싶을 만큼 공감하고 마는 것이다. 가족이란 놀이공원 음식점 같은 것, 한층 더 깊어진 공감의 언어들 놀이공원의 의뢰로 와플을 만들던 이세린이 툭 던진 이런 고백은 힛힛거리며 농담을 따라가다 허를 찔린 듯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어차피 가족이란 고를 수가 없는 것이니, 피차 서로에게 조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치 놀이공원 내의 음식점들이 맛집일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 경쟁 업소 없음. 마음에 안 들어도 달리 옵션 없음.” 만화에서 음식만큼이나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건 가족이다. 그리고 위로 오빠가 둘이라 음식 위에 올리는 고명 같은 존재라며 ‘고명딸’로 불리는 이세린이기에 가족 이야기는 결국 여성인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비빔밥 모형을 만들면서는 대가족 명절을 치르고서 손님들에게 음식을 다 싸주고는 남은 음식을 한데 비벼 먹던 일이 저절로 떠오르고, 한상차림을 만들면서는 예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스러움’을 주입한 학창 시절이 떠오르고, 튀김옷을 입히면서는 자기 몸을 창피해하며 꽁꽁 감추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가족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세린이 떠올리는 한마디 한마디는 ‘음식 만화 아닌 음식 만화’를 지향한 《이세린 가이드》의 매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기에 다시 음식으로 되돌아와 음식을 차리고 먹는다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지, 한층 더 깊은 여운을 자아내는 독특하고 감동적인 음식 만화로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