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
『곰에서 왕으로』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신의 발명』
『대칭성인류학』
인류의 발생부터 마음의 기원까지
인류의 역사와 세계를 신화적 사고로 재해석한
일본 인문학의 거두 나카자와 신이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를 잇는 또 하나의 지적 모험기!
탁월한 신화학자로 일본의 레비스트로스라 불리는 나카자와 신이치는 ‘현대의 인간과학은 라스코 동굴로 들어간 구석기 시대의 인류보다도 훨씬 뒤떨어져 있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교환관계에 의존하는 현대 자본주의 질서, 유일신적인 국가 권력, 견고한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한 합리주의가 비대해지면서 인류는 원형적 정신인 ‘야생적 사고’를 잃어버렸다는 것. 인문학의 죽음과 현대사회의 질곡을 깰 대안이 바로 이 ‘야생적 사고’의 복원에 있다고 주장하는 나카자와 신이치는 새로운 대안적 지성으로 ‘예술인류학’을 강조한다. 21세기의 문화론의 핵심은 바로 예술인류학에서 시작된다는 것.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를 통해서 인류 정신사의 원형을 신화적 분석을 재기발랄하게 보여준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술인류학은 무엇이며, 왜 예술인류학이 현 인문학의 대안적 지성이 될 수 있는지를 자신이 직접 걸어온 지적 여정과 함께 맛깔스럽게 버무려 마치 친근한 친구이자 선생이 옆에서 이야기하듯 생동감 있게 들려주고 있다.
‘인문학의 죽음’을 ‘인문학의 유혹’으로 뒤바꾼 진정한 인문학의 고수(高手) 나카자와 신이치가 인문과학의 새로운 知的 대안으로 내놓은 예술인류학의 진수를 만난다
‘신화학의 신(神)’. 나카자와 신이치를 수식하는 수많은 말들 중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젊은 시절 혜성처럼 나타나 신화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저자는, 2006년 일본 다마(多摩)대학에서 직접 마련해준 예술인류학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일본 인문학계의 새로운 담론을 이끄는 전초기지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술의 발생학뿐만 아니라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미의 문명사, 생명과 뇌과학, 평화학 등 21세기 문화론을 이끄는 그를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고 있다.
나카자와는 인문학의 죽음이라는 담론이 횡행할 때, 논리와 합리성이라는 견고하고 위압적인 학문의 구조물 아래 버둥거리던 사람들을 유연한 상상력이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는 광대한 신화적 사고의 들판으로 끌고 나갔다. 레비스트로스가 인류의 원시 정신세계의 광활한 들판을 선지자처럼 탐사했다면, 나카자와 신이치는 근대적 삶의 질서에 짓눌린 사람들을 하나둘 데리고 야생의 사고, 무의식의 광활한 들판으로 이끌고 간 장본인이다. 이것이 그를 일본 최고의 지성, 혹은 일본의 레비스트로스 그리고 종교학과 신화학의 ‘神’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왜 나카자와 신이치에 중독되는가?
몇 년 전 한국에서도 신화에 열광했던 적이 있지만, 거기에는 뭔가 모를 부족한 2%가 있었다. 소문 무성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던가? 신화 이야기들이 우리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치우쳐 있고, 가려운 곳을 시원스럽게 긁어주지 못하고 수박 겉을 핥기에 그치고 있는 신화 분석에 독자들은 충만감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화에 대한 뜨거운 열기와는 대조적으로 독자들은 공허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갈증을 일거에 가시게 한 장본인이 나카자와 신이치이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총 5권으로 출간된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그의 광대한 사유의 발걸음, 재기발랄하고 탄탄한 신화 분석, 우리의 정서에 부합하는 유라시아 신화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우리는 야만의 시대, 빈곤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계점에 다다른 이 현대 세계에서 ‘야생적 사고’를 깨워라
나카자와 신이치는 다음과 같이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현대의 인간과학은 라스코 동굴로 들어간 구석기 시대의 인류보다도 훨씬 뒤떨어져 있다.” 수만 년 전의 구석기인들을 미개와 야만으로 치부하는 현대인들에게 가히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제2의 형이상학 혁명’으로 완성되는 현대의 삶을 지배하는 질서는 유일신 종교와 짝을 이루는 국가권력, 화폐의 교환에 근거한 자본주의 질서, 합리주의로 대표된다. 하지만 서구 글로벌자본주의가 현실화된 이 세계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균형이 파괴되어, 인간사회와 자연에 폭력과 파괴, 정복,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적 질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의 질곡을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카자와 신이치는 수만 년 인류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를 신화적 사고의 저수지로 안내하면서, 우리 자신의 진정한 내면과 마주하게 한다. 그는 신화는 바로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이며, 인류 정신의 원형인 무의식이라는 광대한 들판에서 만날 수 있는 ‘유동하는 마음’의 가장 원초적 형태가 바로 ‘야생적 사고’라고 말한다. 그가 야생의 사고에서 현대 사회의 대안을 모색하는 이유는 야생의 사고에서 ‘대칭성의 지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경쟁보다는 협조를, 교환보다는 증여의 경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낡은 것이나 약한 것을 소중히 하며, 전쟁보다는 평화를, 타자에 대한 우월보다는 타자를 환대하는 정신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21세기의 새로운 문화론을 창출할 수 있는 근거이다.
나카자와는 말한다. “포스트모던의 시대,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우리 감각과 사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정한 관리 수준에 맞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이나 사고가 ‘야생’의 상태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무의식 속에 잠재한 야생의 감각과 사고를 불러 깨우고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한계점에 다다른 오늘날의 인간 세계에 미래의 바람이 들어올 창문은 절대로 열 수 없을 것이다.”
인류학, 불교, 양자역학, 신화학, 고고학을 두루 껴안아가며 빚어낸 순도 높은 인문학
나카자와는 사통팔달이다. 우주론과 뇌과학, 양자역학 등 과학에서부터 인류학과 종교학, 신화학, 고고학까지 인류의 사고체계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이런 다양한 학문의 아우름은 그의 지적 여정과 생동감 있게 어우러져 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티베트 전승 밀교를 만나기도 하고, 라스코 동굴에 들어간 구석기인들의 ‘유동적 마음’을 엿보기도 하며, 불교의 무분별지(無分別智)와 탁월한 수학자 오카 기요시(岡潔)의 ‘정서적 지성’의 세계를 보기도 하며, 중세 유럽의 광장 건축에서 사회적 ‘권력으로서의 공(公)’이 아니라, 집단적 무의식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표현인 ‘아질(Asyl)로서의 공’의 생기 넘치는 활력을 보게 된다. 다양한 지류들이 마침내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흐르듯, 나카자와 신이치의 지적 여정은 현대사회에서 건강한 대칭성의 회복으로 모아지고 있다.
삶은 예술이며(life is art), 21세기 문화론의 새로운 대안은 예술인류학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단순히 미술작품을 만드는 게 예술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들끓고 있는 유동하는 마음과 대면하고, 인간을 질곡의 사슬에 묶는 낡은 사회적 삶의 질서를 광장에서 새롭게 창조하며, 개념과 보편으로 다져져 하나의 평면적 지(知)로 변해버린 철학이 아니라, 들판을 무대로 시도되는 야생의 사고를 되찾는 인간의 삶 자체가 예술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나카자와 신이치가 21세기의 새로운 대안으로 예술인류학을 주창하는 이유이다. 인간의 인식지평과 새로운 사회질서를 궁극적으로 열어젖히기 위한 창문이 바로 예술인류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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