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결말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유명한 누쿠이 도쿠로의 신작 『미소 짓는 사람』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의 본성을 추적하는 논픽션 형식의 소설이다.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결말은 받아들이지 않는 독자들,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무서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는 척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대형 은행에 근무하는 엘리트 회사원 니토 도시미. 자상하고 냉철하며 업무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젊은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 니토가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 단지 ‘책을 놓을 공간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아 '니토는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냉혹한 면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한편 니토의 옛 회사 동료, 학창 시절 동급생 등이 수상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책 놓을 공간 없어 처자 살해’, 그 이면에는?
요즘 뉴스의 사건 사고를 보고 있노라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 눈을 의심하게 된다. 그만큼 엽기적이고 기괴한 사건이 많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볼 수 있는 대중매체의 반응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들은 제일 먼저 용의자를 분석한다. 어릴 적 커다란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책꽂이에 미스터리 소설은 없는지, 폭력성 짙은 게임 중독은 아닌지. 어떻게 해서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이유를 찾아내 안심하기 위해서다.
『미소 짓는 사람』은 이런 현대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화자는 ‘책을 놓을 공간이 없어’ 아내와 딸을 죽였다고 말하는 니토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진짜 계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터뷰이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화자가 어떻게든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려고 유도하는 부분은 마치 정답을 정해 놓고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화자에 투영한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해한 척하며 살고 있다. 자신들이 이해한 척한다는 사실조차 보통은 잊고 있다.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바로 불안해지니까.
(338쪽)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명망 있는 누쿠이 도쿠로는 『통곡』, 『우행록』, 『난반사』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데뷔작 『통곡』이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경험은 이후 작품 활동의 스펙트럼을 한정시킬 법한데도 누쿠이 도쿠로는 언제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변주해 왔다. 그런 그의 새로운 시도는 『미소 짓는 사람』에서 정점을 찍는다.
●르포르타주 미스터리의 새 경지
『미소 짓는 사람』은 처자妻子 살해 사건을 파헤치는 논픽션 형식의 르포르타주 미스터리이다. 이상한 동기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온 니토에게 흥미를 느낀 화자는 관계자들을 찾아가 증언을 얻어 이를 논픽션으로 정리한다.
사회적 현상을 충실히 기록하거나 서술하는 기록 문학을 뜻하는 르포르타주. 르포르타주 형식을 차용한 문학 작품은 일본 미스터리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건이나 인물을 심층적으로 파헤쳐 현대사회의 범죄에 경종을 울리거나 일인칭 시점으로 독자들의 의식을 미리 의도한 방향으로 끌어낸 후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뒤집어 버리는 것이다. 『미소 짓는 사람』 역시 흐름은 기존의 르포르타주 미스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사건의 개요와 범인, 동기 등을 미리 제시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증언과 증거를 모은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반전도 있다. 하지만 『미소 짓는 사람』은 여타 르포르타주 미스터리와 성격을 달리한다. 전반에 걸쳐 화자의 주관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까닭이다. 화자는 니토를 사건의 범인이자 사이코패스일 것이라 단정한다. 그리고 그가 밝히는 납득할 수 없는 동기를 부정하고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니토의 숨겨진 모습을 찾아내려 한다. 누쿠이 도쿠로는 그런 화자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하고 있다.
르포르타주 소설은 자칫 인터뷰와 화자의 서술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구성이 되기 쉬운데, 작가는 이를 피하기 위해 접근법을 달리했다. 1장에서는 상황을 설명하고, 2장에서는 피해자 측, 3장에서는 형사의 이야기를 하며 시선을 바꾸는 것이다.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독자들에게 다른 인상을 주려는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누쿠이 도쿠로 미스터리 중 ‘최고 도달점’에 위치한 작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를 원하죠. 이해하지 못하면 찜찜하거든요.”
(325쪽)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추억의 조각』이라는 작품을 발표했을 당시,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범인의 동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독자들에게 동기를 이해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던 작가는 마지막에 동기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상한 동기를 제시하면 어떨까에 생각이 미쳤다. 작가는 그렇게 집필하게 된 『미소 짓는 사람』을 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도달점’에 이른 작품이라고 평한다.
『미소 짓는 사람』은 제 작품 중 ‘최고 걸작’이 아니라 ‘최고 도달점’에 이른 작품이에요. 미스터리로서 갈 수 있는 끝까지 가서, 이 이상 가면 미스터리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는 아슬아슬한 부분의 이야기라는 의미로 최고 도달점이라는 표현을 써 봤어요. 미스터리의 틀을 넓히려는 시도를 해 본 거죠. 지금까지 아무도 읽은 적 없는 미스터리일 테니 처음에는 당혹스럽겠지만, 이런 미스터리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_ 누쿠이 도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