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허공을 감싸안는 환한 사랑 노래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후 시쓰기와 평론활동을 병행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끝별의 네번째 시집 <와락>이 출간되었다. 분방한 시적 상상력으로 사랑과 가족과 사람과 우주를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발랄하며, 늘 연민과 온기를 품고 있다. 영롱한 시적 발견들이 가득한 다채로운 편편이 읽는이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시의 성찬이다.
지난 시집에서 길고 아픈 시간을 꽃과 나무의 순연한 몸짓으로 견뎌내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작정한 듯 한결 생기발랄하고 다채로운 노래를 들려준다. 시집 앞머리에 출사표처럼 던져진, 불굴의 표절작가가 되겠다는 당돌한 선언부터 흥미롭다.
난 이제 바람을 표절할래/잘못 이름 붙여진 뿔새를 표절할래/심심해 건들대는 저 장다리꽃을/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싱싱한 아침냄새를 표절할래/앙다문 씨앗의 침묵을/낙엽의 기미를 알아차린 푸른 잎맥의 숨소리를/구르다 멈춘 자리부터 썩어드는 자두의 무른 살을/그래, 본 적 없는/달리는 화살의 그림자를/용수철처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할래(「불멸의 표절」 부분)
듣고 보면 시란 원래 사물을 읽어내어 그것을 다시 쓰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시인은 천 가지 목소리로 천 가지 노래를 부른다. 꽃과 나무를 노래하는가 하면 지구와 별을 노래하고, 시대를 노래하는가 하면 억겁의 시간을 노래하고, 딸과 아버지와 가족을 노래하는가 하면 이름없는 필부필부의 모습을 노래한다. 어떤 시는 애잔한가 하면 어떤 시는 경쾌하고, 어떤 시는 허허로운가 하면 어떤 시는 또 훈훈하다. 차분히 관조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시인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서는 시가 있고, 사태를 소묘하는 데 집중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말의 힘만으로 한달음에 달려나가는 시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정끝별의 시는 정끝별의 시다. 이 다채로운 목소리들이 백화제방하듯 한데 모여 조화로운 것은 그 모든 목소리들에 고루 배어 있는 사랑과 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랑에 대해서라면 할말이 많은 시인이 그 아니던가. 4억 4천만년 전의 별빛과 단 하루 저녁 매미의 울음이, 잎눈을 매단 목련가지와 딸의 머리를 받친 오른팔의 저림이 굳이 말하자면 사랑의 여러 다른 이름들일 것이다. 그것을 굳이 사랑이라 말하지 않는 것이 시 아닌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읊조리는 이런 말이.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누군가는 내게 어께를 대주고//대준다는 것, 그것은/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논에 물을 대주듯/상처에 눈물을 대주듯/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한생을 뿌리고 거두어/벌린 입에/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사랑한다는 말 대신(「세상의 등뼈」 전문)
그렇게 사랑은 여기 주변을 사는 보통의 존재들까지 환하게 감싸안는다. “십만 백만의 작은 불씨들이 모여들던/거기 또다시 네거리에서” “광복의 색소물대포를 온몸으로 맞받고 있”던 당신에게도(「또다시 네거리에서」), “이백원이 웬말이냐 생계대책 보장하라며 해양수산부 앞 도로에 폭락하는 은빛 전어들”(「일톤 트럭」)에게도, “한번도 본 적 없어/살 나누며 살지 못한 남자와/한번도 본 적 없어 살 나누어주지 못한 아들이” “나란히 뒤돌아 오줌을 누”는 무덤가에도(「도랑도랑」) 사랑은 구석구석 가닿는다. 시인은 그것들을 멀리 두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찬찬히 지켜본다. 애써 밀어내지 않고 손쉽게 집어삼키지도 않는 그 시선이 곧 시인의 사랑법이다.
그 시선으로 시인은 쉽게 부스러지는 순간과 존재에 의식적으로 탄력있는 리듬을 부여한다. “묏도랑”이 “도랑도랑”으로 읽히고, 뱃속에서 나는 “꾸꾸루꾸꾸” 소리가 캐스터네츠가 내는 소리가 되고, “저린” 팔이 “절여지는” 몸으로 이어진다. 이 반복과 변주와 미끄러짐으로 이루어지는 특유의 리듬감이 시집에 풍성한 질감을 불어넣는다. 그 리듬을 타고 한때의 순간이 영원과 교통하고, 작디작은 존재가 무궁과 연결된다. 그 리듬이 또한 시인의 사랑법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그 사랑을 ‘와락’이라 이름 붙였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권혁웅에 따르면 ‘와락’은 껴안음에 수반되는 부사이기도 하고 눈물을 쏟을 때의 부사이기도 하며, “운동의 강도와 정도로 측정되는 존재형식”이자 “더이상 나누거나 덜어낼 수 없는 시간들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모든 시간을 감당하는 시간들”이다. 그 ‘와락’으로 ‘나락’과 ‘벼락’이 감싸안아지고, 또는 쏟아져나오고, 텅 빔과 가득 참이 바람 한자락으로 그려지는 절경이 여기 있다. 이쯤되면 ‘와락’이라는 부사가 정끝별의 시에 이르러 비로소 부사로서 온전하게 시가 되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막막한 나락//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불후의 입술/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허공을 키질하는/바야흐로 바람 한자락(「와락」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