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폭력과 죽음을 뚫고 호쾌하게 날아오른다!”
알레고리와 번뜩이는 환상의 21세기 요재지이
남자와 여자, 중국 대륙과 타이완 섬, 과거와 현재, 환상과 실재…
이 모든 상극적 질서를 초월해 날아오르는 여자귀신들
“여자귀신들은 평범한 여성이 할 수 없는 엄청난 복수를 감행한다.
하지만 사실 이 소설의 중심은 복수를 마친 이들이 어떻게 자유를 찾아가느냐 하는 데 있다.
이들 여자귀신 다섯은 모두 어둠의 극치를 경험하고 나서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된다.”
- 리앙
문학동네가 4월 28일에서 4월 30일까지 인천문화재단 주최 ‘제2회 AALA(아시아/아프리카/라틴)문학포럼’의 초청작가로 한국을 찾는 타이완의 여류소설가 리앙李昻의 을 출간했다. 현재 타이완 문단에서 부동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2004년 발표작이다.
지난 30년간 그녀는 정치체제에 대한 저항과 우상파괴적이고 과감한 성적 묘사로 매번 큰 논란을 일으켰고 그 탓에 온갖 시비와 비난에 시달렸던 작가다. 특히 제1회 [연합보聯合報] 소설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2003)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백정에게 팔려가 성 노리개로 유린당하다 끝내 남편을 죽이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 발표되자 온갖 비난이 쏟아졌고 적잖은 문학계 인사들이 이에 가세했다. 심지어 일부 독자들은 생리대나 팬티를 보내어 작가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등 10개 언어로 번역되고, [아주주간]이 선정한 ‘100대 중국문학’에도 선정되어 그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이 작품은 1991년 한국에서도 <살부>란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눈에 보이는 귀신>은 작가 스스로 “빛에서 어둠으로 나아가는 단초”가 됐다고 밝힌 바 있는 작품이다. 이 장편소설에는 여자귀신이 펼치는 다섯 편의 모험담이 실려 있다. 이 다섯 편의 이야기는 각기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묘한 내적 연관성을 지닌다. 예를 들면, 1장에 나오는 ‘월진/월주’는 죽은 뒤 소금더미에 갇혀 오랜 세월을 지내다 일제 강점기에 깨어나 타이완이 파괴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불견천’과 거기에 살고 있는 귀신인 ‘월현/월홍’의 운명을 걱정한다(본문 34쪽). 처음 이 대목을 접한 독자는 어리둥절하고 무슨 소린가 의아해진다. 하지만 그 의문은 3장에서 저절로 풀린다. 이런 식으로 독립성은 지닌 이야기가 작은 실마리로 서로 연결돼 큰 이야기가 되도록 구성한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다섯 편의 귀신 이야기는 동, 북, 중, 남, 서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익숙한 동서남북 순서를 취하지 않은 것은 작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종결되는 구조는 처음과 끝이 없는 무궁한 순환의 역사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작가는 소설에 나오는 여자귀신을 한 가지 이름이 아닌 ‘월진/월주’("나라의 동쪽-정번파의 귀신"의 주인공)나 ‘월현/월홍’("나라의 서쪽-여행하는 귀신"의 주인공)같이 두 가지 이름을 병렬 표기해 지칭함으로써, 이들이 특수한 개인을 넘어선 여성 일반을 가리키는 복수적인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중국이란 거대한 제국의 주변부 타이완 섬의 운명과, 그 주변부의 주변부에 해당하는 여성계층의 역사적 운명을 환상적인 이야기체로 그려서 보여준다. 여자귀신들이 저마다 품은 사연들은 그대로 타이완의 역사가 되고 여성의 역사가 되고, 타이완의 정체성과 여성의 미래를 질문하는 밑바탕이 된다.
몇 년 사이, 한국 문단에도 중국어권 주요 작가들이 속속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하지만 타이완 작가는 열외의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면, 타이완 근대사는 우리 한국 근대사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민주화 시기뿐 아니라 군부독재의 암흑기를 거친 것도, 산업화를 추진해 단기간에 물적 성장을 이룬 것도 참 닮았다. 게다가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홍콩과 더불어 타이완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영향이 드리워진 중국 대륙보다 한층 더 우리에게 친근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타이완 문학을 등한시해왔던 게 사실이다. 리앙의 <눈에 보이는 귀신>은 이런 풍토를 쇄신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타이완의 독특한 성질과 아름다운 풍속이 선연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는 귀신들의 우화적인 모험을 통해 해묵은 양안 문제의 역사적 연원과 본질을 이야기하고, 그 너머에 있는 자율적인 인간(이는 억압의 상태에 처한 모든 인간으로 확장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닌 존재)의 존재와 그를 구속하는 억압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정치政治’와 ‘성性’이란 이중의 질곡을 어떻게 풀 것인지 파고들어, 어둠을 뚫고 저편의 ‘출구’로 나선다.